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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을 지나 다시 펜을 들며

by 이사벨라



막막함을 지나 다시 펜을 들며


가슴만 떨고 있을 때는 지났다. 학기말 시험이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왔다. 시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긴장하는 내 모습을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사실 이번에 듣고 있는 교회사 역사 과목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롭고, 읽을수록 길이 열리는 듯한 배움의 기쁨이 있었다. 그럼에도 시험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건, 아마도 오래된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대학에 다닐 때 나는 시험 준비에 독특한 방식이 있었다. 나올 법한 개념들을 통째로 암기하는 방법이었다. 어떤 때는 아예 교과서 한 권을 통째로 외워 시험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모든 문장과 개념이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떠오르니 시험지를 받아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이 주는 안정감이었다.


지금 내 나이 예순아홉. 예전처럼 모든 것을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놀랍게도 여전히 외우는 과정 속에서 이해가 깊어진다. 문장을 반복해 머릿속에 새기다 보면 흐름이 잡히고, 전체의 구조가 보이고,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외울 수 있고, 여전히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이자 신기한 발견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차근차근 노트를 펼친다. 다가오는 목요일이 시험이지만, 이번 주는 오랜만에 ‘학생의 시간’으로 살기로 했다. 화요일까지는 마음을 다잡고 집중해서 공부하고, 수요일에는 푹 잠을 자며 몸과 마음을 재울 생각이다. 세 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체력도 마음도 모두 단단해야 하니까.


시험은 여전히 부담이지만, 그 두려움을 피하지 않는 일은 내게 또 다른 의미의 배움이 된다. 나이를 먹어도 흔들리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기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삶의 한 부분이 된다. 이제는 완벽한 암기보다,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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