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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답답한 맛에 보는 연프

by 온화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신선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솔로지옥 등 기존 연애프로그램은 외모, 매력 혹은 스펙이 출중하며 연애 경험도 풍부한 사람들이 서로 ‘플러팅’을 하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멋지게 보여줌으로써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다르다. 모태솔로인 출연진들은 머뭇거리고 민망해하고 힘들어한다.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 상대의 시그널을 해석하는 방법, 뜻대로 안되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서툴다. 오답을 남발하기 일수고, 정답으로 향하는 과정이 몇 배로 험난하다. 설렘과 도파민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태 연애프로그램과 결이 다르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기존의 연애프로그램에서 약했던 요소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는 성장 서사다. 서사는 연애프로그램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뜬금없이 혹은 어거지로 출연진이 커플로 매칭되는 것을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비록 그 끝이 최종커플이 아니더라 해도, 시청자들은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있으며 출연진의 감정선이 개연성 있게 펼쳐지는 서사를 원한다. 하지만 이 연애 서사는 출연진들 간의 케미스트리와 연출진의 편집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운과 실력이 모두 따라주지 않는 한 구현되기 어렵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영리한 전략을 취한다. 연애프로그램의 본질인 서사를 살리면서도, 연애 서사보다 훨씬 더 연출하기도 쉽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도 큰 성장 서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고장나기만 했던 사람이 용기 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기회가 생기기를 기다렸던 사람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간다. 상대와 자신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좌절하던 사람은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연애 가치관이나 이성을 대하는 방법을 고집했던 사람은 자신의 태도가 지닌 문제점을 께닫게 된다. 이렇게 출연진의 성장 서사를 하나하나 공들여서 보여줌으로써, 이 연애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출연진의 진정성을 믿고, 출연진을 응원하고, 추후 출연진의 성장한 모습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출연진들 간 커플링뿐 아니라 출연진 그 자체를 응원하도록 만들었다는 지점에서 니 프로그램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웃음이다. 물론 여태 연애프로그램에 웃음 포인트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여태 연애프로그램과 달리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솔로나 솔로지옥3처럼 기존 연애프로그램은 ‘빌런’ 출연진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했다. 하지만 이 연애프로그램은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미숙하고 답답한 행동, 모태솔로만 모여 있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서 웃음을 유발한다. 서로 썸을 탈 생각은 안하도 스케이트에만 매진하는 롤러장 장면과, 100일의 연애경험밖에 없는 출연진이 견제를 받는 메기남 등장 장면이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와 화제성을 얻는 현상이 이를 입증한다. 혈압 상승을 동반하는 웃음이 아닌, 황당함을 동반하는 '시트콤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애프로그램은 독보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에 진입장벽을 가진 사람, 혹은 과몰입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담백한 매력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프로그램의 중요한 성취이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램의 패널도 호평을 받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패널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패널의 역량에 따라 연애프로그램의 성공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패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첫 번째는 출연진의 감정선, 출연진들이 처한 상황을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풀어내는 역할이고, 두 번째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속시원한 코멘트를 날리거나 센스 있는 멘트를 통해 시청자의 웃음을 유발하며 극적인 상황을 이완시키는 역할이다. 정인국, 강한나 배우는 전자의 역할을, 카더가든과 이은지 코미디언은 후자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전자의 역할을 소화하는 패널 덕분에 시청자들은 가끔 너무 답답하거나 황당한 출연진들의 행동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척 질 뻔한' 출연진들을 다시 보듬게 된다. 그리고 후자의 역할을 소화하는 패널 덕분에 시청자들은 출연질을 향한 패널의 일침에 공감하며 프로그램을 보면서 쌓이게 된 짜증스럽거나 갑갑한 감정을 유쾌하게 해소하게 된다. 제 역할을 다하는 패널 덕분에 이 연애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이 연애프로그램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바로 '코칭' 시스템이다. 이전 연애프로그램에서 출연진과 패널은 철저한 '남'으로서, 일정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패널과 출연진은 남이 아니다. 각 패널은 출연진 두 명에서 세 명을 전담하며,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하기 전 연애 코치로서 출연진의 메이크오버와 연애 기술 습득을 돕는다. 아는 사이이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만큼 패널들은 자신의 담당 출연진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연민 혹은 응원의 마음이 담긴 코멘트를 던진다. 시청자들과 패널들이 한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시스템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유도한다. 또한 출연진들 간 케미, 그리고 패널들 간 케미뿐 아니라, 출연진과 패널 간 케미라는 요소도 도입함으로써 프로그램의 내용 자체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어차피 과몰입이 대세인 시대에서, 패널도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하는 사람이 나닌 과몰입의 주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애프로그램은 자극성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순한 맛을 콘셉트로 내세운다해도, 어느 정도의 자극성이 없다면 프로그램이 화제성을 얻기 힘들다. 특히 OTT에서 에피소드로 연재되는 시리즈인 만큼 말이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엔딩맛집'으로 시청자에게 도파민을 선사한다.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메기 출연진이 첫 마디로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하는 장면을 엔딩으로 하거나, 순탄한 연애 노선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 출연진이 목 놓아 오열하는 장면을 엔딩으로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반전과 충격을 선사한다. 예고편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이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다음 공개일을 기다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향후 프로그램을 연출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에피소드 끝맺음 방식은 꽤 유용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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