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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l 05. 2024

Sleepless in Boston

Part 2. 편지-Off the Record

엄마, 미국에서 살 장소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보스턴을 선택할래.

처음에는 다들 모든 일정이 뉴욕에서 진행되지 않아서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다들 보스턴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아쉬워해. 오히려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지. 


보스턴에는 예쁜 시계탑이 있어. 엄마가 길을 잘 찾으려면 랜드마크를 꼭 기억해 놓아야 한다고 나한테 신신당부했잖아, 보스턴에서는 어딜 가도 그 시계탑이 보여서 길을 잃은 적이 없었어. 빅벤이랑 비슷해서 마치 유럽 같은 분위기도 나. 구글에 검색하니까 이름은 Custom House Tower래. 

사진에서 보이듯이, 보스턴은 흰색 대신 노란색인 조명을 써. 친구들은 이게 ‘신의 한 수’ 같다고 하는데, 나도 동의하는 바야.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거든. 조명 불빛같은 작은 디테일에도 신경 쓰는 이 도시의 섬세함 때문에 이 도시가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해, 엄마. 엄마는 내가 떠나기 전날까지 미국이 위험하다고 걱정했잖아, 그런데 보스턴은 사람의 경계를 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 

엄마가 우리 숙소 위치 정말 좋다고 말했잖아. 말 그대로야. 퀸시 마켓이 걸어서 5분 거리거든. 각종 식료품 상점과 음식점이 늘어서 있는데, 랍스터와 새우처럼 해산물 먹거리를 많이 팔더라고. 2층에는 사람들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는데, 다들 너무 좋다고 감탄했어. 세련되고 깔끔한 공간보다는 이색적이고,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공간이야. 아치형 창, 옛날 간판, 반짝이는 전구, 붉은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어. 

시멘트 벽보다는 붉은 벽돌을,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을 더 좋아하는 엄마와 어울리는 장소라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 현지인들은 랍스터롤, 타코, 피자를 저녁으로 먹고 있었고, 나 또한 언니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이랑 쿠키를 나눠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어. 엄마랑 나랑 여기 근처에 살았다면 엄마 저녁하기 싫을 때마다 우리 여기 와서 외식했을 것 같아. 


미국 공원하면 센트럴 파크만 생각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보스턴 사람들은 억울해할 수도 있어, 엄마. 보스턴에서도 ‘퍼블릭 가든’이라는 공원이 있거든. 센트럴 파크처럼 거대한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오히려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공원의 특징은, 동상과 (이것도 나중에 검색해보니 조지 워싱턴 동상이라네) 다람쥐가 많다는 것이야. 겨울이라서 공원이 황량하긴 했지만, 잔디와 나무를 잽싸게 오가며 뛰노는 다람쥐 때문에 나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 엄마는 질색하겠지만, 그래도 난 가까이서 보니 꽤 귀엽더라고.

보스턴 공공 도서관은 보스턴 떠나기 바로 전날에서야 갈 수 있었어. 여기를 보지 못하고 뉴욕으로 떠났다면 후회했을 것 같아. 유럽풍이라고 해야 할까? 건축을 좋아하는 엄마는 더 멋진 단어를 썼을 텐데, 미안해. 아무튼 도서관이 루브르 박물관처럼 웅장하고 고풍스러웠어. 계단을 올라가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책이 아니라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을 보러 가는 길이 아닌가 헷갈릴 정도로. 

책과 열람실이 조성된 내부는 마치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성 같았어. 특히 에메랄드색 전등이 자칫 너무 근엄해서 밋밋해질 뻔한 이 도서관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아. 물론 사람들 구경도 했지. 이 공간에 발을 들인 것 자체만으로 미안할 정도로 현지인들은 개인 공부나 업무에 조용히 몰입하고 있었어. 대학생 때 주말에도 학교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는 엄마 말이 생각났어. 엄마랑 내가 여기에 살았다면 이 장소에 매일 오지 않았을까? 일단 엄마랑 같이 우리 동네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부터 같이 가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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