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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Sep 17. 2024

지브리의 숨은 보석

<바다가 들린다>과 <귀를 기울이면> <붉은 돼지>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 시간이 흐르고 나서 봐야 비로소 납득되는 장면들을 모아봤다.


1. 바다가 들린다

너희 혹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와, 반갑다! 웬일이니?' 이런 말 하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난 네가 리카코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 별로였어. 사실 끔찍이도 싫어했지. 근데 오랜만에 보니까 싫지 않고 정말 반갑더라. 뭐랄까? 교실 짝 바꾸기처럼 초등학교 때 싫어하는 애랑 짝이 되면 실망해서 학교고 뭐고 가기 싫고 그러잖아. 그 좁은 세상에 싫어하는 짝이 있으면 속이 다 쓰린데, 그러다가 학원, 피아노 교습, 학교 밖의 세상을 접하면 싫어하는 애 한둘은 있든 말든 관심 없어져.

그 얘긴 곧...너의 세상이 좁았던 점을 반성한다는 거야? 그래서 리카코에게 반감이 있었던 거고?

그건 피장파장이야. 나도 잘못했지만, 리카코도 자기 세상이 너무 좁았던 거라고 직접 말했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당연히 리카코와 타쿠의 이야기에 눈이 갔지만, 다시 봤을 때는 학교 동창회에서 시미즈와 타쿠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마음에 박혔다. 

대학생활은 본인이 경험하는 세상이 넓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의 가능성과 타인의 가능성을 비교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이라는 양귀자 소설 <모순>의 문장처럼, 나 또한 대학생이 된 후 나와 타인 간 경험하는 세상의 크기가 얼마나 차이나는지에 민감해졌다. 자연스레 세상이 넓은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내던지면서 내 세상을 확장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실제로 지금 내가 큰 바다에 헤엄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학교 밖의 세상을 접함으로써 나의 세상이 좁았던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시미즈의 솔직한 독백에 공감이 되었다.

나 또한 학창 시절 싫어했던 또래 학생이나 선생님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왜 상대를 미워하는 것에 그렇게 큰 에너지를 쏟았는지, 상대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커녕 일방적으로 내 억울한 감정만을 앞세웠는지가 후회가 되었다. 또한 상대에 대한 미움이 상대의 잘못이 아닌, 사실은 나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때 그러지 말 걸. 조금 더 잘 해볼 걸'하는 아쉬움이 커지는 관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리카코를 미워했던 감정을 후회하는 시미즈의 감정에 이해가 갔으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있어보였다.


<바다가 들린다>가 아련한 첫사랑의 이야기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쉽다. <바다가 들린다>는 '뒤늦음'의 미학이 담긴 영화다. 타쿠는 리카코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며, 리카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시미즈는 리카코를 미워했던 마음이 자신의 열등감 때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유타카는 뒤늦게 타쿠에게 사과하며 우정을 회복시키고, 리카코는 뒤늦게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이 타인을 상처 입혔다는 사실을 반성한다. '왜 그때는 몰랐고 이제서야 알았을까'하는 마음, '바로잡고 싶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하는 마음이 모든 인물의 성장서사를 관통한다. 뒤늦음을 발판 삼아 나아가려는 이야기가 담겼기에, <바다가 들린다>는 관객의 마음을 잔잔히 울린다.


2. 귀를 기울이면


더 우울해졌어. 모든 게 자신 없어.

이해가 안 돼. 나라면 편지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하며 지낼 텐데.

그렇게 뛰어난 애한테 뭘 격려하니?

시즈쿠, 넌 재능이 있어.

나 정도는 수없이 많아. 그 애가 그랬어. 걔는 자기 재능을 확인하러 가는 거야. 나도 시험해 볼래. 결심했어. 나 글을 쓸 거야. 쓰고 싶은 게 있어. 그 애가 한다면 나도 해볼거야


솔직히 말해 주세요. 원하는 만큼 못 썼어요. 뒷부분은 엉망이고요. 저도 알아요. 

그래, 거칠고 덜 다듬어진 세이지의 바이올린 같구나. 시즈쿠의 원석을 보게 돼서 기뻤다. 수고했다. 넌 멋진 애야. 서두를 필요 없다. 천천히 다듬어 가렴. 

저요, 써 보고 알았어요. 의욕만으로는 안 돼요. 더 많이 공부해야 해요. 하지만 세이지가 앞질러 가니까 무리해서 쓰려고 했죠. 너무 두려웠어요.


영화를 처음 보면 시즈쿠와 세이지의 풋풋한 첫사랑에 집중하게 되지만, 영화를 다시 보면 '앞서나가는' 세이지와 멀어지고 싶지 않은 시즈쿠의 절박함과 불안함에 주목하게 된다.

멋진 사람이 가까이에 있으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기도 하고, 그 사람과 동등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한다. 벌어진 격차는 불안과 초조함을 안겨주고, 그 격차를 메우고 싶어하는 열망은 내게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귀는 기울이면>은 그 폭풍우 같은 마음을 시즈쿠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 역시 시즈쿠처럼 무리한 노력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저만치 앞서나갔으며, 나만 계속 제자리에 고여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명한 성취를 만들어내야겠다는 강렬한 의욕이 샘솟았다. 그렇게 매진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냈는데, 내게 찾아온 것은 성취감이 아닌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었다. '동등해지고 싶다' '뒤떨어지고 싶지 않다'를 넘어선, 더 깊고 단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즈쿠의 말처럼 더 많은 지식과 훈련일 수도 있고, 어쩌면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난 나의 내적 동기일 수도 있다. '원석이 발굴되는 과정'은 제시하지만, 그 원석을 '어떻게 천천히 다듬어가야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관객 스스로 고민해보게끔 만들었기 때문에 <귀는 기울이면>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 


3. 붉은 돼지

포로코를 믿어요.

싫어하는 말이지만 네가 하니 듣기 좋군.


영화를 처음 보면 포로코의 마법이 풀릴 수 있을지 기대하며 보지만, 영화를 다시 보면 돼지로 살아가기로 한 포로코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포로코가 걸린 마법을 퇴치해야 할 저주처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마법을 푸는 것을 포로코가 꼭 달성해내야 하는 중요한 과업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대신 한창 전쟁이 진행되는 사회상과, 친우를 떠나보내야 했던 포로코의 트라우마를 보여줌으로써, 포로코가 세상사에 회의를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독자가 수긍하게 만든다. 인간일 바에 차라리 돼지로 살아가겠다는 포로코의 선택은, 광기의 시대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무익한 전쟁에 소중한 이들이 희생되는 현실에 지쳐버린,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나타낸다. 

여기서 인상깊은 것은, <붉은 돼지>가 극단적인 사고는 경계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포로코를 염세주의자로 나타내지만, 비관의 대상이 부조리한 사회일 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되지는 않도록 만든다. 바로 지나와 피오라는, 포로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인물을 통해서이다. <붉은 돼지>는 포로코를 향한 지나와 피오의 사랑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지나는 매일 자신의 비밀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포로코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포로코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포로코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사라진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는 지나의 헌신은 결국 포로코가 영화 마지막에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야무지고 영리한 피오는 존재 자체만으로 마르코가 경험은 없어도 '영감'이 있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상기하게끔 만든다. 비행 도중 포로코를 훌륭하게 보조하고, 포르코를 존경하는 마음을 말과 행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피오의 행적은, 포로코가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도록 만든다. 포로코가 세상에는 여전히 빗장을 걸어잠갔지만, 그래도 사람에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과정을 담았기에, <붉은 돼지>는 씁쓸함에 따스함이 더해진 매력적인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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