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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드림

by 온화

로봇 드림은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도그와 로봇의 만남과 이별을 그렸다. 운명적인 첫 만남부터 행복한 순간들, 갑작스러운 이별, 상실의 고통, 새로운 관계의 시작, 그리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이 영화는 누구나 공감할 인간 관계의 본질을 꿈과 음악이라는 모티프로 섬세하게 짚어낸다.

나아가 영화는 이별을 통한 성장, 그리고 관계를 대하는 성숙한 태도라는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이는 주인공도그와 로봇이 재회라는 최초의 목표가 좌절된 이후 새로운 인연을 향한 헌신으로 자신의 목표를 옮겨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인물, 상황, 배경, 소품을 활용한 반복과 변주로 구현된다.


음악이라는 모티프

우선, "September"라는 노래는 개와 로봇의 관계를 상징하는 모티프로 작용한다. "September"가 처음으로 획득하는 의미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다. 영화는 도그와 로봇이 뉴욕을 산책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September"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며 둘의 유대를 강조한다. 줄거리가 진행됨에 따라 "September"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그 의미가 점차 깊어진다. 예시로, 로봇은 자신의 꿈에서 도그를 그리워하며 "September"를 휘파람으로 분다. 이는 노래가 둘 사이 추억을 넘어 개를 향한 로봇의 깊은 사랑을 상징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클라이맥스에서는 "September"가 영화의 주제와 더욱 밀접하게 얽힌다. 음악이 처음으로 흘러나온 장면과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장면은 대조적이다. 함께했던 두 인물은 이제 서로 떨어져 있다. 도그는 뉴욕 거리에 있고, 로봇은 라스칼의 집에 있으며, 둘은 각자 새로운 동반자인 틴(Tin)과 라스칼(Rascal)과 함께한다. 하지만 "September"가 연주되는 동안, 둘은 과거에 함께 췄던 춤을 완벽히 재현한다. 영화는 multiple frame을 활용하여 개와 로봇을 나란히 배치해 마치 그들이 같이 춤추고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영화는 도그와 로봇 각자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음에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소중했던 추억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한다.

재회의 가능성이 좌절된 게 확정된 상황에서도 "September"는 엔딩 크레딧이 뜰 때까지 흘러나온다. 흥겨운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도그와 로봇이 각자 새로운 동반자와 행복하게 춤추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이들의 낙천적인 태도를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또한 카세트 플레이어라는 소품을 통해 로봇의 몸통은 현재 라스칼의 테이프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September"가 녹음된 도그의 테이프를 담을 또 다른 공간을 늘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추억이 새로운 의미 있는 관계를 쌓는 토대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꿈을 통한 감정의 서술

꿈은 이별을 경험하는 두 인물의 감정 상태를 전달하는 subjective narration으로 활용된다. 대사가 없는 무성 영화의 한계를 참신하게 극복함과 동시에, 꿈속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가장 깊은 욕망과 감정을 반영한다는 심리학 지식을 영리하게 활용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을 통해 영화는 이별 이후의 갈망, 슬픔, 불안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줄거리 내내 로봇은 세 번의 꿈을 꾸고, 도그는 한 번의 꿈을 꾼다. 로봇의 첫 번째 꿈에서 로봇이 장애물인 울타리를 넘어가는 장면은 잃어버린 상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상징한다. 로봇이 도그가 대체 로봇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두 번째 꿈은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로봇의 세 번째 꿈에는 로봇과 도그가 함께 보았던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에메랄드 시티를 변형한 배경이 등장한다. 꽃들과 함께 춤추는 장면은 과거 센트럴 파크에서 함께 춤추던 모습을 반영하며, 춤의 대열은 개의 얼굴 모양을 띠고 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전달한다.

꿈과 현실의 뚜렷한 대조도 인상적이다. 감독은 로봇이 개의 집에 도달하려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담아 재회를 향한 로봇의 열망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열망은 계속해서 좌절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꿈에서는 해양 경찰인 토끼가 로봇에게 기름을 주며 녹슬어서 몸이 굳었던 로봇이 다시 일어나게 돕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토끼가 로봇의 왼쪽 다리를 잘라낸다. 세 번째 꿈에서 로봇은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현실에서 로봇은 차가운 얼음 속에 갇힌 채 움직이지 못한다.

토끼는 꿈에서는 조력자지만 현실에서는 적대자이며, 꿈 속 에메랄드 시티는 따스하고 환상적이지만 현실의 겨울 해변은 춥고 황량하다. 인물과 배경의 극단적인 차이를 통해 영화는 깨진 사이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귀결되고 마는, 이별의 불가피하고 냉혹한 속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관계와 성장

영화는 이별 후 새로운 관계의 발전을 장소, 사건, 소품을 활용하여 섬세하게 보여준다. 로봇과 라스칼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자면, 로봇이 라스칼과 함께하는 시간은 로봇이 도그가 함께했던 시간과 언뜻 비슷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난다. 라스칼 만나기 이전까지, 로봇에게 도그는 공원, 핫도그, 비디오게임 등 세상을 처음 알려준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하지만 라스칼은 로봇을 야구 경기장에 데려가거나, 피자를 맛보게 하거나, 옥상에서 불꽃놀이를 보여주면서 로봇에게 로봇이 도그와 함께했을 때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소개하고, 도도그가 로봇에게 제공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둘이 벽지를 바르는 동안 "September"가 아닌 라스칼의 테마곡이 흘러나온다. 로봇의 몸을 구성하는 카세트 플레이어, 황금 발은 라스칼이 로봇을 위해 새로 장만한 것이다. 이러한 대조적 요소와 변화된 로봇의 외형을 통해 영화는 새로운 관계가 과거와 같지 않다 해도, 자신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그의 경우 틴과 함께 오션 비치를 다시 방문하지만, 과거 로봇과 함께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과거 도그는 로봇이 물에 뛰어들고 격하게 노는 것이 걱정되어도 가만히 지켜만 봤다. 현재 도그는 틴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단속하고, 틴이 과거 로봇처럼 녹슬지 않도록 틴의 몸에 오일을 충분히 바른다. 이는 새롭게 시작한 관계에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로봇의 노력을 상징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조를 통해 도그의 개선점을 나타냄으로써 영화는 이별을 통한 배움과 성장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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