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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30. 2023

[NZ 04] 싸움질

뉴질랜드, 테아나우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퀸즈타운 숙소를 나온 우리는 다시 공항을 찾아, 예약해 둔 렌터카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운전이 서툰 H 대신 운전을 좋아하고 한국과는 반대인 운전 방식이라도 그 자체를 재밌어하는, 1종 면허 소지자(심지어 수동으로 면허를 딴)인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여행지에서 렌터카를 빌려 운전을 한다면 100% 내가 운전자다. 타협은 불가다. 나와 함께 여행을 가본 친구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운전부심이 상당한 사람이라 양보는 없다지.


퀸즈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를 가려면 직선 코스로는 도로 자체가 없다. 그래서 '테아나우'라는 남쪽 도시까지 내려간 뒤에 다시 올라가는 방법이 유일한데 왕복 5~6시간이 넘는 거리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퀸즈타운에서 출발하는 1일 버스 투어를 신청해 가곤 하는데 우린 계속 남쪽으로 내려갈 예정이라 아예 테아나우에서 2박 하며 그곳을 베이스캠프로 삼기로 했다.


숙소는 사람 좋은 노부부 두 사람이 살면서 방 하나를 빌려주는 곳이었는데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문 손잡이 하나까지 디자인 감각이 느껴지는 아~주 럭셔리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은 방에서 내다보이는 안마당인데, 이웃집과 경계가 없는 이런 게 가능한 일인가?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테아나우 관광에 나섰다. 사실 우리 두 사람에게 관광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밥집을 찾아가는 길을 좀 삥 돌아 걸으면서 동네를 구경하는 게 다인데, 그러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곳이 나타나면 들어가 보는 거다.   


<Fiordland Cinema> 건물 앞에서 둘 중 누구도 '들어가 볼까?'라고 묻지 않았지만 우리 둘은 이미 매표소 앞에 서있었다. 테아나우와 밀포드 사운드가 있는 이 지역은 '피오르랜드'라고 불리는 국립공원인데 이곳을 헬리콥터 시점으로 촬영한 다큐를 상영하고 있었다. 다큐의 질도 궁금했지만 상영관 내부가 더 궁금했던 우리는 표를 끊고 들어갔다. 작품은 글쎄올시다...


극장이란 곳은 우리 두 사람에겐 흥미진진한 공간일 수밖에


극장 내부의 카페에서 H가 뭔가를 주문하고 있다


극장을 뒤로하고 마트 구경도 하고 기념품 가게도 구경한 우리는 오늘, 좀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코스를 갖춘 요리였지만 맛은 가격에 비해 그다지 우리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진 못했다. 


고기에선 냄새가 났고 소스는 짜기만 했다


식사 마무리 무렵, H와 나의 싸움질이 시작되었다. 사실 싸움이란 서로 의견이 달라서 각자의 주장을 펼쳐 보이다 보니 언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린 싸운 게 맞다.


이미 90일가량의 여행을 통해 내가 많은 돈을 썼다는 걸 아는 H가 자꾸 자신의 돈을 쓰려고 해서였다. 극장 앞에서도 그러더니 오늘 저녁도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물론 나에 대한 배려로 그런다는 걸 알지만 분명히 함께 하는 모든 것에 1/n을 하기로 해놓고 본인의 돈을 쓰려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미안한 일이 자꾸 생기는 거라 그게 싫었다.


배려심 돋는 1인과 결벽증을 가진 1인의 싸움은 디저트를 다 먹고 나서도 끝이 나지 않았고 우리는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계산은 H가 하긴 했다. 우린 공동의 경비가 발생할 경우, H가 우선 결제를 하고 여행이 끝난 후 그녀가 1/2로 나눠 나에게 알려주기로 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싸움은 내가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정산을 하며 그녀가 자신이 사겠다고 한 부분을 정산에 넣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운 한 가지.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제발 누군가의 배려를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받는 것도 상대를 위한 '나의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  


젠장.

                    

오늘의 이동 [퀸즈타운->테아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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