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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Feb 06. 2023

[NZ 08] 여자의 마음 같다는 뉴질랜드의 날씨

뉴질랜드, 더니든&테카포 호수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한국인 약사님이 챙겨 준 비타민 C의 덕일까. 감기가 차도를 보인다. 다시 가보자.


뉴질랜드 최남단 도시 블러프를 떠난 우리는, '더니든'에서 1박을 했다. 처음 이 여행을 계획하며 하루에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를, 최대 3시간 정도로 잡자고 합의했는데 우리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테카포 호수'로 들어가기 전 이곳에서 한 템포 쉬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테카포 쪽은 깡시골이라 주변에 큰 마트도 없을 게 분명해, 장도 거나하게 보기로 했다. 


문제는 더니든 시내가 주차난이 심각해 도저히 공간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어차피 마트에서 장을 볼 테니 마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내를 돌아다니다 오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했으니 당연히 주차는 무료일 거라고, 한국식으로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이곳저곳 산책하며 시내 구경을 하고 마지막으로 마트에서 고기와 와인 등을 산 뒤 차로 돌아와 보니 벌금 스티커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근처에 있던 주차 요원(한국처럼 주차 안내를 하는 알바가 아니라 스티커를 들고 돌아다닌다)에게 우리가 산 물건을 보여주며 어필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내가, 니네 차대고 마트 빠져나가는 거 다 봤어.


뉴질랜드의 주차 시스템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차를 대고 마트로 바로 들어갔더라면 문제가 없었을까. 오만 인상을 다 쓰고 한 마디 툭 뱉고 가는 그 사람을 다시 불러와 싸울 수도 없었다. 벌금이 꽤나 나왔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Otago Settlers Museum


동네 산책의 재미는 벽화 구경


맥주를 살까 와인을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동안엔 벌금을 낼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지


오늘의 이동 [더니든 -> 테카포 호수]


다음 날,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뷰 맛집이라고 알려준 동네 카페에서 모닝커피 한 잔을 즐긴 뒤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이번 숙소는 테카포 호수 인근 농장이었는데 별채 하나를 통으로 우리에게 주었다. 침실, 화장실, 거실, 부엌, 테라스 모든 걸 우리만 쓰라니. 어제의 일로 더러워졌던 기분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침저녁으로 농장 스태프가 양이며 소에게 밥을 주는 일과를 테라스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고 비가 그친 뒤 무지개가 아련하게 걸려있는 마운틴쿡 정상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했다. 


우리가 머문 숙소 앞 360도 전경


얘들아, 밥차 왔다


숙소의 반려돼지가 자꾸 나를 쫓아온다...


우리가 이 동네를 찾은 이유는 테카포와 푸카키 두 호수를 모두 둘러볼 수 있고 무엇보다 마운틴쿡 국립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이 어마무시한 산을, 등산이라면 기겁하는 내가 올라갈 리는 만무하지요.


자연 자체로 어필하며 관광 사업을 벌이는 나라 대부분은, 나처럼 등산은 싫은데 걷는 건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온갖 트레킹 루트를 개발해 두었다는 거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평지만으로 구성한 '후커밸리 트레킹'은 심지어 땅에 평탄화 작업이 되어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가장 기대했던 이 트레킹을 하지 못했다. 산을 찾은 날 비가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인데 아무리 평탄화 작업이 되어 있는 길이라 해도 폭우와 함께 우산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몰아쳐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우리는 기가 꺾여 버렸다.


남섬을 찾은 가장 큰 이유가 이렇게 황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뉴질랜드의 날씨가 얼마나 예측불허인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정해진 시간밖에 없는 관광객에겐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이젠 남섬의 마지막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로 떠나야 하는데 너무나 화창한 하늘을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우린 그때까지 몰랐다. 

문제의 이 날씨 때문에 이번 여행을 송두리째 망쳐버린 어마무시한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도착 첫날의 날씨. 하늘에 무지개와 달까지 걸렸는데 말이야


첫날 저녁은 관광객 1도 없는 동네 바에서 피쉬앤칩스를


폭풍우를 뚫고 돌아와 벽난로에다 말리고 있는 처량한 내 운동화와 그날의 저녁


저 맑디맑은 하늘 좀 보소. 호수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을 때까지 우리의 앞 날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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