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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Feb 09. 2023

[NZ 11] 여행 베테랑들의 멘탈 붕괴 사건(2)

뉴질랜드, 남섬 어드메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일단 급하게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로 들어가서 계속 지도와 뉴스를 예의 주시하다, 폐쇄가 풀렸다는 소식이 뜨면 그게 몇 시가 되었던 출발 한다. 하지만 아침 6시 정도까지 기다렸는데도 도로가 풀리지 않으면, 이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놓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니 즉시 퀸즈타운으로 향한다.  


우리는 짐도 풀지 않은 채, 일단 대사관에 연락을 시도했다.


도대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말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는 다른 길은 없는 게 맞는지도 확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남섬을 담당하는 영사관 직원 하나와 통화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가 말해 줄 '정확한 상황'에 따라 우리가 취할 다음 액션이란 것이 정해질 것이고, 정해지면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까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이미 퀸즈타운에서 출발하는 오늘자 마지막 비행기는 자리가 없음을 확인했고 내일 비행기 역시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금액이 3배 이상 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영사관 직원은 다른 길은 아예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고(뭐라도 확실한 게 하나는 생겼네) 우리는 구글 지도와 NZ 교통국에서 보내준 지도 링크를 모두 켜놓고 계속 새로고침 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1시간쯤 흘렀을까. 희한한 일이 생겼다. 


구글 지도상으로 2개의 도로 중 일반 국도가 '통행가능'이라고 떴지만 NZ 교통국 지도는 여전히 폐쇄였던 거다. 어떤 지도를 믿어야 하는가. 다시 영사관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보는 구글 지도도 역시 통행이 가능하다고 나온다 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오롯이 우리끼리 결정이란 걸 내려야 했다. 우린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숙소를 퇴실하고 무작정 국도로 향해 본다. 만약 여전히 폐쇄가 되어 있다면 우린 길가에 차를 대고 잠을 자면 된다. 운이 좋아 내일 아침 6시 이전에 길이 열리면 우린 1등으로, 그 웬수같은 강을 건너면 되는 거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의 이 선택은 최악이었다.




NZ 교통국 말대로 도로는 여전히 폐쇄되어 있었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구글 지도를 폭파해 버릴 수도 없었고 거의 뜬 눈으로 차에서 보낸 우리는 동이 터오는 걸 허망하게 바라봐야 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의 숙박비를 날리고, 몇 시간 머물지도 않은(그래도 라면 하나는 끓여 먹었네) 새로운 숙소도 또 날리고, 이가 덜덜 떨려오는 차 안에서 밤을 새우다니. 와. 


결국 우리는 항복을 선언했다. '오늘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타는 건 불가능하다'란 판단이 그제야 정확히 내려졌다. 


재난 문자를 받은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꼬박 하루라는 시간을, 이 미련 때문에 날려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날려먹은 건 시간만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몇 자리 있던 퀸즈타운에서의 출발 항공편이 모조리 만석이었다. 결국 우리는 오클랜드까지 직항도 아닌 경유지를 거쳐야 하는 항공권을, 처음 예약했던 항공권의 5배를 지불하고, 오늘도 아닌 내일 출발하는 항공권을 겨우 살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부터 우리는 퀸즈타운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또다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건 정말 여행이 아니라, 사람의 피를 말리는 고행길이었다.



뉴질랜드까지 와, 이름 모를 도로가에서 차박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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