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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금 Sep 16. 2022

04. 해바라기 꽃 한 송이


 수술 날은 곧 다가왔고 나는 수술 전날 입원을 했다. 많은 대학 병원들이 그렇듯 다인실에는 자리가 없었고, 나는 2인실로 들어갔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한강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높은 층수에서는 한강이 보였다. 내가 입원한 암 병동은 16층에 자리하고 있어 병실에서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침대가 창가 쪽에 있어 밤에도 야경을 쭉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나는 병실이 마음에 들었다.


 옆자리에는 50대 후반 정도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갑상선 암 수술을 위해 입원하셨다고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 같아 마음이 놓였다. 입원한 날 밤 창 앞에 서서 물끄러미 한강의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옆자리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씀하셨다.

"이 예쁜 야경을 누구는 저 호텔에서 보고, 나는 암 병동에서 보고 있으니 너무 속상해." 

병원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메리어트 호텔 하나뿐이었고, 그 호텔은 병원보다 한강에 더 가까이 있어 아마 전망이 더 예뻤을 것 같다.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보는 풍경은 비슷한걸요. 저기서 보는 거나 여기서 보는 거나.. 약간 거리 차이지 보이는 건 거의 비슷하잖아요. 여기가 병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으면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지금 기분이 되게 좋은걸요." 

병원 창밖이 꽉 막혀있거나 우울하지 않아서 얼마나 행운인가. 내일 큰 수술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그냥 잠시 호텔에 투숙한 고객에 빙의해 잠시라도 야경을 즐기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병실료가 호텔비랑 비슷비슷할 것 같아 최대한 즐거운 기분으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원하던 날 낮에 엄마와 오빠는 함께 병원에 와서 입원 수속을 하고, 내일 있을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둘 다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오빠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고 엄마는 오빠네 손주를 봐주셔야 했다. 가족이지만 제각각의 일상이 존재하므로 신경은 쓰되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게 당연하다. 

전화 온 베프에게 혼자 있다고 했더니 베프가 병원에서 같이 자겠다며 일을 끝내고 밤에 찾아왔다. 사실 혼자여도 별 상관없었지만 그 마음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는 나와 달리 베프는 불편한 간이침대에서도 금방 잠이 들었다. 어쩜 그렇게 쉽게 잠드는 건지 너무 부러웠다. 호텔에서 지내는 기분으로 있겠다 마음은 먹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세상이 고요해지니 내 머릿속은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시끄러워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아침이 되었고, 수술실에 가기 전 엄마도 오셨다. 수술 시간이 다가오자 한 남자 직원분이 나를 데리러 왔다. 엄마와 베프에게 병실에서 인사를 하고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일을 하러 갔다가 오후에 다시 오겠다고 했고, 어머니는 병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직원분이 끄는 간이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했다. 아직 멀쩡한데 왜 굳이 누워서 가야 하는 건가 싶어서 직원분에게 물었더니 수술 전 최대한 침상에서 안전하게 이동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 천정의 형광등이 스치는 그 풍경을 보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 장면은 흡사 인생의 주마등과 비슷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정한 간격의 형광등을 볼 때마다 생각도 하나씩 늘어가는 기분. 몇 분이 안 되는 시간이지만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올 수는 있을까 잠시 무서워지기도 했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교수님과 스텝 의사분들이 침대에 깔려있던 천을 잡아 나를 간이침대에서 나를 수술대로 옮겼다. 수술대는 정말 차가웠고 조명도 차가웠다. 교수님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던 내 팔을 문질러주시며 수술 잘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교수님의 손은 정말 따뜻했고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주사가 들어간 후 숫자를 몇 개 세기도 전에 나는 잠에 들었다. 







 눈을 떴더니 수술실이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회복실인 것 같았다. 뻥 뚫린 네모 공간에 장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 걸로 보아 수술실에서 나온 침대를 놓는 곳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었고, 의료진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한 침대만 있었는데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가쁜 호흡을 내쉬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아유 저런. 내가 누굴 동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 사람은 분명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임이 분명했다. 최소한 나는 숨은 편하게 쉬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을 보고 있자니 멀쩡하게 다시 눈을 뜬 내가 행운아처럼 느껴졌다. 불행을 절대적 수치로 변환할 수 없지만 더 큰 불행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면 불행을 느끼는 감정도 결국은 상대적인 것이었나 보다.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 내 가슴은 무사한지 수술은 몇 시간이 걸린 건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유방암의 수술은 가슴을 전부 제거하는 전절제와 암이 있는 부분만 도려내는 부분절제로 나뉜다. 나의 암은 왼쪽 가슴 윗부분에 있어 부분절제가 가능하다고는 했으나 수술실에서 환부를 열었을 때 암세포 모양에 따라 전절제로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겨드랑이 임파선에 있던 혹도 수술 중에 열어서 간이 검사로 암인지 아닌지 확인한 후에 암이 보이지 않으면 감시 림프절만 몇 개만 제거하고 봉합하게 되고, 만약에 암으로 판정될 시에는 겨드랑이 임파선 전제를 제거하는 추가 수술을 받게 된다고 했다. 한 마디로 수술 전에 아무것도 확정된 것 없이 열어봐야 안다는 것. 그러니 눈 뜬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지금 몇 시간이나 흘렀나였다. 임파선 전이가 아닌 경우에는 수술이 3시간 안에 끝나고, 추가 수술은 더 걸린다고 했으니 지금 시간을 알면 내가 어떤 수술을 받고 나왔는지 알 수 있지만 회복실에는 시계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한참 후 간호사님이 왔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간이 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지 않아서 감시 림프절만 제거했고, 가슴도 부분절제로 했다고 했다. 떼어낸 조직들의 추가 검사에서 암이 발견되면 다시 수술을 받게 되겠지만 일단 지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병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멀쩡하게 웃으며 병실로 돌아와서인지 엄마의 얼굴에 근심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물과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전신마취 가스를 폐에서 다 빼내기 전에는 안된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은 열심히 깊은 호흡을 하며 기다리라고 하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시계만 보며 기다리느니 복도라도 걸어야겠다 싶어 링거 폴대를 밀어가며 복도를 거닐고 있는데, 저 멀리 복도 끝에서 해바라기 꽃 한 송이를 가방에 꽂은 채 걸어오는 베프가 보였다. 내가 맞은편에서 손을 흔들자 친구가 환하게 웃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저장되어 있다.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해사하게 웃던 고마운 내 친구. 


친구는 내가 누워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너무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심지어 수술은 받고 나온 게 맞냐고 물었다. 내가 너무 해맑게 웃으며 팔을 흔드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조금은 웃겼다고 했다. 그렇게 웃고 수다를 떨다 수술 날이 지나갔다. 아직 여러 산이 남았지만 첫 번째 산 '외과적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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