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2주 만에 외래 진료로 교수님을 만났다. 다행히 겨드랑이에서 절제한 림프절의 추가 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지 않아 전이는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전이가 없어 암 사이즈가 4센티 정도 되지만 2기를 받았다. (0기에서 4기 사이 딱 중간이다.) 대신 젊은 환자라 재발률도 높고 짧은 시간에 암이 커진 것으로 보여 항암치료는 해야 하고, 먼저 방사선 치료 33회를 받고 그 후 항암치료 4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수술 전날에 수술 부위를 체크하기 위해 만난 펠로우 선생님이 가슴에 있는 혹의 사이즈가 커서 임상적으로 봤을 때 임파선 전이 확률이 80% 이상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무섭다고 소문난 항암치료는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 짐을 덜어낸 기분이었다.
다시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가 있던 곳에 방사선을 쏘아 미세하게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 방법이다. 치료 순서는 교수님마다 다르고, 환자 증상마다 달라지기도 한다. 방사선 치료는 핵의학과에서 전담하고 있어 그때부터는 핵의학과에서 치료를 받는다.
나는 가슴 부분과 림프절을 절제한 겨드랑이 부분까지 두 군데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아직 수술 상처가 완전히 아문 상태는 아니었지만 다들 그렇게 치료받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배려해주셔서 오전에만 근무하고 점심시간에 퇴근해, 주 5일 병원에 와서 대기하다가 20분 정도 치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질 즈음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겨드랑이 부위가 빨갛게 부어올라있었다. 조금씩 붉어지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방사선 치료가 약간의 화상과 비슷하다는 설명이 있어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봉합 부위가 조금 부풀어 올라있는 것이 눈에 보여서 선생님께 물었더니 좀 안 좋아 보이니 유방암 센터에 외래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날은 진료를 받을 수 없어 월요일에나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상처는 월요일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음 날 걷잡을 수 없이 상태가 나빠졌다. 겨드랑이 상처부위가 더 부어올라 왼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하필 토요일. 병원에 가도 선생님들이 아무도 안 계시는 날이다. 최대한 버티려고 했는데 저녁시간이 되자 통증이 더 심해지고 상처 부위에 엄청난 열감이 느껴져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집에 혼자 있던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혼자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병원복으로 갈아입는 것조차 어려워 간호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입었다. 그리고 응급실 안쪽 중증 환자 전용 응급실로 옮겨졌다. 현재 암 치료 중인 환자라 그렇게 분류된 것 같다. 유방암 센터도 핵 의학과도 선생님이 아무도 안 계셔서 일반 외과 담당 선생님이 봐주셨다. 몇 가지 검사를 한 뒤 누워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오셨다. 나는 아무래도 상처가 덧난 것 같으니 항생제를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항생제 과다 처방으로 말이 많아 그냥 처방은 안 된단다. 세상에, 지금 내 꼴을 보고서도 그냥 처방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가. 그리고 피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애매해서 항생제 처방이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본인도 확신이 없었는지 몇 걸음 떨어져 여기저기 다른 교수님들께 전화를 해서 내 상태에 대해 묻는 게 보였다.
하지만 얼마 후 나의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고 선생님은 두께가 3센티는 족히 넘는 대형 주사기를 들고 나타났다. 상처에 물이 차서 부풀어올라 통증이 심하니 그걸 빼자고 했다. 그리고 아픈 상처에 그 굵은 주사기를 꽂아 피가 잔뜩 섞인 액체를 뽑아냈다. 내가 엄살이 조금만 심했다면 아마 그 순간 비명을 질러댔을 것이다. 진통제 한 알 주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무자비하게 찌르는 건 너무 비인간적 아닌가. 그날 밤 퇴원할 때 받은 처방전엔 진통제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월요일이 왔고 모든 환자 진료가 끝난 후 유방암센터 펠로우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 주말 사이 있었던 상황을 이야기하고 상처를 보였더니 안타까워하며 말씀하셨다.
"운이 안 좋았네요. 바로 항생제만 먹었어도 오늘 상처를 다시 여는 일은 안 생겼을 텐데."
역시나. 이미 많이 덧나 있는 상태라 다시 열어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진료실 침대에서 국소마취만 한 뒤 봉합했던 자리 10센티가량을 그대로 다시 열었다. 상처 안에는 살이 괴사가 진행되어 괴사 된 살을 긁어내야 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건 그대로 다시 봉합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괴사가 진행되고 있어 바로 봉합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당분간은 거즈를 채워 넣고 겉에 드레싱을 한 상태로 지내면서 매일 내부 상태를 확인해 더 이상 괴사가 진행되지 않을 때 봉합하겠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는 당분간 연기되었고, 나는 매일 선생님의 진료시간이 다 끝난 뒤에 진료실에서 괴사 된 살을 긁어내고 새 거즈를 채워 넣고 드레싱 하는 일을 반복했다.
사람의 살을 10센티나 절제한 상태에서 꿰매지도 않고 비어있는 공간에 거즈를 꽉꽉 채워 넣어 대형 방수 밴드를 붙여놓는다니. 내가 봉제인형도 아니고 이건 뭔가 싶었다. 암 진단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