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고추만 먹을 일이 없었는데, 밑반찬으로 나오는 걸 보면 꼭 멸치랑 같이 볶아져 있다. 어릴 적엔 멸치만 골라먹었는데, 어른이 되고 같이 먹다 보니 은근히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멸치만 씹을 때의 까슬거림은 칼슘과 단백질이 담겨있고 멸치로는 부족한 비타민을 알싸한 꽈리고추가 보충한다. 고추라서 매울 듯 하지만 맵지 않아 먹는 아삭 맛이 있다. 어쩌다 매운 꽈리고추의 맛에 걸렸을 땐 침샘이 폭발한다. 매울 땐 밥을 한입 더 먹는 수밖에.
잔멸치는 아몬드, 호두등 견과류와 만날 때 주객이 전도된다. 아몬드보다도 작은 멸치크기에 기를 피지 못하니 잔멸치들끼리 뭉쳐있게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먹는 듯 뿌듯하다. 멸치와 뇌에 좋은 견과류를 넣은 것은 아무래도 아이들의 위한 반찬이 되다 보니 아몬드 외에 호두 땅콩까지 들어가 견과류 볶음인듯하지만 여전히 작은 멸치들이 여백을 채우고 있기에 메인은 멸치볶음으로 불린다.
견과류 멸치볶음은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러 가는 수험생 도시락에 들어가야 할듯하고, 꽈리고추멸치볶음음 단풍놀이 가는 엄마의 반찬통에 들어가야 어울린다.
멸치에 고추장양념은 볶아진 진미채 볶음처럼 달짝지근하게 먹어도 맛있다.
소주 한잔에 안주삼아 멸치와 고추장을 찍어먹으며 TV를 보던 아빠가 생각난다. 나도 그 옆에 앉아 멸치의 대가리와 내장을 떼어가며 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맛. 멸치를 통째로 씹어 먹을 때 온전한 멸치즙을 맛볼 수 있다. 멸치즙과 고추장의 매운맛으로 혀에 군침이 돈다. 엄마도 옆에 앉아 멸치를 손질하면 그날 밥상엔 굵은 멸치가 고추장에 볶아진 반찬이 올라온다.
멸치군과 꽈리고추양이 만난 이유를 알았다. 서로에게 끌린 게 분명하다.
꽈리고추에는 멸치에는 없는 비타민이 있고 멸치에는 꽈리고추에는 없는 칼슘이 있다.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자 까슬거림의 담백함과 알싸하게 매운맛이 조화를 이룬다. 서로에겐 없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택했다는 것은 현명하고도 미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연인, 부부의 인연도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 뜨겁게 사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너무 달라 힘든 경우도 많다. 나와 달라서 좋아했지만, 나와 다르니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