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로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부모는 배부르다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사과를 맛있게 소리 내며 먹는 아이의 모습마저도 예쁘다. 나는 사과에 담긴 계절선물과 향긋한 사과나무가 가득한 과수원을 한 아름 안겨준 것 같이 뿌듯해진다.
가을초입이면 홍로사과가 나오는데 '한국 오면 꼭 먹어봐야 할 과일맛 중에 하나'라고 나는 자부한다. 생긴 건 흔히 보는 사과처럼 동글동글하지 않다. 마치 달항아리 입구에 꼭지가 대롱 달린 모양처럼 울룩불룩하다가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우아하게 매끈하다.
가을햇살의 기운을 듬뿍 품은 빨알강이지만 노오랑과 연둣빛의 그라데이션이 드문드문 오로라처럼 이어져있다. 열매의 탐스러운 사과의 색을 보면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란 시처럼 저절로 붉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담긴 태풍, 천둥, 벼락, 땡볕, 초승달이 모두 담겨있다는 것 역시 과장이 아니다.
껍질을 깎는 건 햇살을 버리는 것. 매혹적인 빨간 사과에게 칼을 들이대는 건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먹기만 해도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붉은 껍질은 꼭 먹어야 한다. 반질거리는 사과에 베이킹소다를 바르고 문지르면 미끄덩거리던 촉감은 '뽀드득' 소릴내며 미끄러진다.
사과의 반을 가르고 다시 반을 가르고 씨 있는 부분만 삼각집을 내어 도려낸다. 네 조각이 되었다.
아이는 사과 한 조각을 들고 하얀 속살을 깨문다. 속살과 공기층이 만나 사과즙을 깨무는 촉촉한 '츄잉 아삭' 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다음 껍질을 깨물 때 한 조각 베어나가며 '바삭' 경쾌한 마무리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사과하나를 다 비우자 소나기가 그친 것처럼 '츄잉 아사삭 츄잉 아사삭'소리도 멈추었다.
사과를 깨무는 촉촉한 가을의 소리.
아이가 햇살을 먹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