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산책. 8
1. 폭염(暴炎)과 다름 바 없는 더위.
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지나가 얼마 전까지 불볕더위에 치닫던 더위가 한풀 꺾이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된더위는 태풍과는 별개였다. 이 폭염(暴炎)과 다름없는 더위에 휴가지를 떠나도 어디를 가던 인산인해(人山人海)이다. 예로부터 문인들은 이러한 더위에는 설경과 같은 겨울이나 혹은 시원한 산수를 그린 그림을 감상함으로 더위를 즐겨왔다.
이처럼 옛 문인들처럼 시원한 산수를 몇 점 소개함으로 더위를 조금이나 이겨내 보려 한다. 여러 그림 중 이번에는 금강산 일대의 동해안을 뽑아보았다. 휴가철 때마다 동해안의 푸른 바다가 인기라 그와 연관시킨 것도 있지만, 지금은 갈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서 금강산 일대의 동해안을 선택하였다.
2. 고요한 동해안의 제일경(第一景), 망양정(望洋亭)과 초간정(淸澗亭).
강원도 동해안의 비경 중 제일을 꼽으라면 셀 수 없을 정도의 명소들이 나오지만 빠지지 않는 곳들이 있다. 바로 망양정(望洋亭)과 초간정(淸澗亭)이다. 망양정(望洋亭)과 초간정(淸澗亭)은 16세기 당대의 문사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이 쓴 관동별곡(關東別曲)에 나올 정도로 명승지 중에서도 명소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문인들은 가사와 시조에 언급된 지명을 여행하는 기행(奇行)이 늘어난다. 특히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은 시대의 베스트셀러였기에 동해안을 찾는 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후기 화성(畫聖)이라 일컫는 겸재 정선(鄭歚, 1676~1759)이 있다. 특히나 정선은 강원도의 동해안과 금강산 일대를 여행과 동시에 그림을 남기는 등 문인이 가진 예(藝)라는 격(格)을 보여주었다. <관동명승첩>에 수록된 <망양정(望洋亭)>과 <초간정(淸澗亭)>이 바로 그 예(藝)의 격(格)이다.
<망양정(望洋亭)>은 기암괴석 같은 절벽 위에 아슬아슬 휘 자리를 잡고 있으며, <초간정(淸澗亭)>은 산릉선이 끝나는 지점에 배치되어 기암괴석을 마주하고 있다. 바다의 파도 물결이 일렁거리는 특징도 잘 담아내었다. 동해안이라는 거친 바다만큼이나 강원도의 지질을 보여주는 기암괴석을 개성 있게 그려내어 동해안의 그 특유의 험준함과 더불어 푸른 바다라는 포근함이 대치적으로 그려져있어 감상함에 재미를 요하고 있다.
<망양정(望洋亭)>의 경우 작은 화면이지만, 정자가 있는 절벽은 수직준(垂直皴)으로 내려 공간의 긴장감을 주고 있다. 또한, 왼쪽 그림 하단에는 뾰족한 괴석군(怪石群)을 그려 넣어 감상하는 데 그림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초간정(淸澗亭)>은 다소 완만해 보일 수 있겠지만, 화면 가운데에 높게 솟은 바위산과 그 바위산에 자리 잡은 소나무들이 있어 비경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험준한 바위산의 정상을 보면 문인들이 오순도순 모여 동해안이라는 넓은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그림의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다.
3. 동해안의 문, 문암(門巖).
망양정(望洋亭)과 초간정(淸澗亭) 만큼이나 동해안의 숨은 비경(祕境)이 있으니 바로 문암(門巖)이다. 문암(門巖)은 강원도 고성 해안에 있는 명소로 두 개의 바위기둥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어 마치 문과 같다고 하여 문암(門巖)이라 이름이 붙었다.
문암(門巖)은 금강산과 금강산의 해금강을 가는 지로(知路)에 자리 잡고 있어 당시 문객(門客)들이 필수로 다녀간 명소라 한다. 아마 문(門)처럼 기둥과 기둥이 마주 보고 있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기에 문객(門客)들이 많이 다녀간 것 같다.
문암(文巖)도 대표적인 화가가 겸재 정선(鄭歚, 1676~1759)이다. 정선의 경우 초기 금강산과 동해안 일대를 다녀온 그림과 말년에 다녀온 곳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이 있다. 두 그림 모두 간송미술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지금 보고 있는 그림은 <통천문암도(通川門岩圖)> 말년작이자 걸출한 득의작(得意作)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정선이 특유로 많이 활용하는 수직준(垂直皴)으로 문암을 그려내었다. 이전 그림과 다른 점은 수직준(垂直皴) 다소 짙은 농담과 더불어 굵게 내렸다. 이러한 준법은 문암(門巖)이라는 거대한 바위를 웅장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동해안이라는 바다는 가는 실선으로 길게 늘려 그렸으며 화면의 절반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넓은 실선의 파도가 바위를 삼길 것 같지만, 짙은 바위가 파도를 뚫은 것 같은 긴장감이 보인다.
이와 반대로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문암도(門巖圖)>를 보면 정선이 의도한 긴장감과는 달리 해안가의 고요함과 여름이라는 청량감을 집중시켰다. 정선은 문암이라는 주제를 그림에 상기시켰다면, 김홍도는 문암을 산수라는 자연의 일부로 치환시킴으로 주변 배경의 조하를 조성하였다. 더불어 문암(門巖)이라는 명소보단 해안가라는 지역의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정선의 경우 문암(門巖) 만큼이나 지나가는 인물들의 자세를 보면 바다라는 긴장감을 보인다. 김홍도는 문암을 정말 문처럼 사람들이 일상처럼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확연히 눈에 띈다.
정선은 문암(門巖)을 통하여 자연이 가지고 있는 긴장감을 화면에 나타내었다. 반면 김홍도는 자연도 일상의 요소인 것처럼 고요하고 눈에 보이는 사실성을 토대로 그렸다. 감성적 운치를 원할 경우는 정선의 문암을 볼 것이며, 동해안의 고요함을 느끼고 싶다면 김홍도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곳.
아쉽게도 이번에 선보인 그림들의 지명은 현재 예전 모습이 아니다. 어느 곳은 군사 분계선에 있어 볼 수 없으며, 다른 곳은 6·25 전쟁으로 파괴되어 근래에 와서 복구되어 옛 모습을 잃었다. 그림으로 남겨진 명소들이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참 좋았으랴만, 전쟁이라는 비극이 우리의 역사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아쉽지만, 그래도 휴가 때 동해안을 가면 한 번씩 그 명소를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