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산책. 10
1. 화중지왕(花中之王)의 꽃, 모란.
겨울이 왔다는 것은 벌써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23년도 참 많은 일이 있었으며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 해였다. 24년은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일들보다는 부유하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란 그림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모란만큼 부귀(富貴)와 아취(雅趣)를 겸한 화훼(花卉)가 없다. 군자의 표상과 더불어 재물을 같이 겸한 모란은 화중지왕(花中之王)이란 제목을 가질 정도로 품의가 으뜸으로 치는 꽃이다. 눈 서리가 한발로 내리는 겨울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 추위와 함께 길상(吉祥)을 느껴보려 한다.
2. 묵향이 깃든 모란.
2_1. 현재 심사정의 묵모란도(墨牡丹圖).
매화와 개나리와 같은 봄꽃들이 질 때쯤이면 피고 올라와 화단을 풍성히 장식하여 정원용으로도 많이 식목(植木)되었다. 더불어,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서 함부로 향을 팔지 않는다는 유명한 고사를 지닌 화훼(花卉)여서 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모란은 모란도(牡丹圖) 선비들이 문인화의 화목으로 즐겨 그린 소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18세기 문인화를 이끈 현재 심사정과 표암 강세황의 모란 그림은 지금 보아도 묵향과 모란의 아취(雅趣)가 그윽하게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위 그림은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그린 먹으로 그린 모란으로 담묵(淡墨)의 절묘함과 농담 대비의 여운이 잘 담긴 그림이다. 왼쪽 그림의 경우 화면 중앙에 옅은 담묵으로 모란을 한 잎씩 올려 풍성히 나타내었다. 꽃의 하단에는 담묵(淡墨)에 농(濃)을 더해 색감의 차이를 주어 푸른 잎과 가지가 퍼진 것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상단 부분에도 잔가지가 위로 뻗어 올려있어 작은 화면에 상대적으로 그림이 커 보이는 화면감이 느껴진다. 작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수묵의 장엄함이 다분히 나타난 그림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목단과 목련 그리고 새가 같이 그려진 그림이다. 왼쪽과 마찬가지로 먹으로만 그렸다. 먹으로만 그렸음에도 농담의 변화를 잘 살려 먹의 시각적인 효과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목련 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통해 그림의 여유를 보여준다. 모란의 경우 농담 묵을 활용하여 꽃의 크기와 변화를 주어 모란이라는 부귀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정해년(1767) 겨울, 먹을 희롱하며 즐겨 그렸다.”라는 화제의 내용이 그림의 소소함 재미도 선사해준다.
2. 묵향이 깃든 모란.
2_1. 표암 강세황의 죽석모란도(竹石牧丹圖).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18세기 예원의 총수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조선 후기 예술의 지도자이자 감식안을 갖춘 인물이었다. 더불어 그는 시서화에도 남다른 재능을 갖춰 당대 삼절(三絶)이라 불릴 정도로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이다.
강세황이 그린 죽석모란도(竹石牧丹圖)는 채색을 올린 그림이지만, 담채로 그려 차분하고 단아해 보인다. 모란의 경우 옅은 먹선으로 꽃을 그리고 그 위로 묽은 담채의 홍색과 화심(花心)을 올려 모란의 풍성함이 더 깊게 느껴진다. 중앙에 자리 잡은 꽃의 경우 먹선이 다소 지저분해 보이지만, 사실 풍성한 모란이 시들이 지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모란이라는 꽃의 사생이 잘 담겨있다. 색이 잘 담겨있어 늦봄과 초여름의 풍성한 모란의 격조가 느껴진다.
3. 화려함이 가득한 모란.
3_1. 애춘 신명연의 모란화훼도(牧丹花卉圖)
18세기 현재 심사정과 표암 강세황을 필두로 문인화를 격조를 꽃피웠다면, 19세기는 애춘 신명연(申命衍, 1808~1886)과 일호 남계우(南啓宇, 1811~1888) 등이 채색화로 그림의 화려함으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애춘 신명연의 경우 표암 강세황의 제자이자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교류한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의 둘째 아들이다. 신위의 서자(庶子)이자만, 아버지의 서화(書畫) 재능을 이어받아 당대에 그림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솜씨를 뽐내었다. 특히 아버지의 문인화적 성격과 당대 청대화풍(淸代畫風)을 고스란히 답습하여 개성적인 그림을 그렸다.
위 두 그림은 신명연의 그림으로 곱고 화려하게 모란을 표현하였다. 이전 시대와 달리 모란이 장엄하고 아취(雅趣)가 느껴지는 풍조보다는 부귀하고 휘황찬란(輝煌燦爛)함이 돋보인다. 더불어, 꽃잎과 잎의 맥을 보더라도 사실적이고 색의 변화 역시도 모란이라는 사실성이 다분히 잘 담겨있다.
18세기의 표암(豹庵)과 현재(玄齋)와 비교하면 문인의 아취가 다소 부족하게 보일 수 있지만, 모란이라는 화려함과 사실성이 돋보이어 채색의 격조가 잘 느껴진다. 더불어, 19세기 당대 문인들의 화려함을 추구한 경향도 같이 나타난 결과라 당시의 시대상도 같이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즉, 모란이라는 부귀옥당(富貴玉堂)이라는 주제가 절실했던 한 시대가 아닌가 싶은 재밌는 상상력도 함께 준다.
3. 화려함이 가득한 모란.
3_2. 일호 남계우의 호접도(蝴蝶圖).
애춘 신명연 묻지 않은 채색화로 일호 남계우가 있다. 남계우는 숙종대의 문신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5대손으로, 정3품의 벼슬까지 지닌 인물이다. 그만큼 가문의 격이 높은 집안이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당시 도화서 소속의 화가나 중인 출신의 화가들이 주로 그린 채색화에도 일가(一家)를 이룰 정도로 섬세하고 잘 그렸다. 특히 꽃과 나비를 그려 남나비라는 별칭이 불릴 정도였다.
일호 남계우가 그린 호접도(蝴蝶圖)를 보면 나비와 모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일호 남계우가 그린 호접도(蝴蝶圖)를 보면 나비와 모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상단의 있는 두 마리의 나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비가 모란을 향해 날갯짓하고 있으며, 모란 역시 나비들을 향해 풍성히 피어있다.
신명연의 그림처럼 색감이 화려하여 꽃과 나비의 사실감이 돋보인다. 더불어 꽃잎과 나비의 날개 역시 사실적으로 실선을 넣고 그려 그림의 풍성함을 더해주고 있다. 비단에다가 채색을 올려 그린 그림이라 화려함과 장식성이 돋보인다. 또한, 세밀히 나타난 모란의 풍성함과 화려함이 화면에 가득 차 있다. 보는 순간이 참 부귀해지는 그림이다.
4. 화려한 모란처럼.
모란이 화려함과 부귀를 가진 꽃인 것처럼 보는 사람마다 행복감을 주고 있다. 화려함과 부귀함을 풍성히 올리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지고 꽃봉오리를 피어 올렸을지를 생각해보면 그냥 되는 일은 없다. 풍성함을 지닌 모란처럼 올겨울, 다가오는 봄을 위해 몸과 마음의 수련을 쌓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같이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