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텃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2년 가까이 간헐적으로 수영을 해오면서 그런 분위기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초급반에서는 물속에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급급했다.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곧 중급반으로 올라갔기에 오랫동안 한 레인에 머물던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 역시 휴식기를 제외하면 6개월 만에 중급반으로 승급했기에, 이 수영장에는 텃세가 없는 줄만 알았다.
처음으로 그 낯선 분위기를 느낀 건 2년 만에 중급반에 올라간 날이었다. 초급반에서는 온 힘을 다해 물에 적응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중급반은 달랐다.
연령도, 수영 경력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한 레인에 섞여 있었다.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고급반 대신 중급반에 머물며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어르신들, 열정을 안고 승급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막 건너온 어리바리한 신참까지.
그 아수라장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줄 세우는 언니'라고 불렀다. 처음 보는 얼굴에게도 주저 없이 다가가 속도와 자세를 살피더니,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레인을 정리했다.
속도만큼은 자신 있었던 나는 금방 상위권에 배치됐다. 젊음의 힘이 속도의 원천이었던지라 금세 지쳐 레인 구석에서 헉헉거리며 쉬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줄 세우는 언니가 다가와 다그쳤다.
"안 돌아? 왜 계속 쉬어? 빨리 가."
나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좀 쉬고 갈게요. 먼저 가세요."라고 했지만, 그녀는 계속 나를 지켜보고, 때론 자세까지 지적했다. '이게 수영장 텃세인가?'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하면 그녀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가 옆 레인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한동안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었다. 레인 구석에서 숨을 돌릴 여유도 생겼고, 수업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며칠 후, 쉬고 있던 내 곁으로 그녀가 다시 다가왔다.
"자기, 이제 1번 서도 되겠다. 폼도 좋고 속도도 괜찮아. 곧 우리 레인으로 오겠네."
뜻밖의 말에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의 거친 말투 속엔 오히려 관심과 격려가 담겨 있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성장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수영장은 물로만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물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 세우는 언니의 다그침은 텃세가 아니라, 누구보다 진심 어린 관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