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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Aug 04. 2023

내 기억 속 최초의 ‘행복’


여섯 살까지, 친구가 없었다. 지독히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아빠는 가정을 꾸리고도 일을 쉽게 그만두셨다. 긴 이야기가 있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남동생을 가여워하던 고모가 우리를 받아주셨고, 여섯 살 정도까지 고모 가족과 함께 살았다. 고모네 집은 말 그대로 산속 외딴집이었다. 사방이 산이고 그 사이로 논이 펼쳐져 있다. 논 한 가운데 고모네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가까운 집이나 슈퍼에 가려 해도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엄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다. 농사일을 돕고, 식사 준비를 했다. 다른 어른들도 모두 농삿일에 바쁘셨기 때문에 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로 혼자 있거나 강아지들과 놀았다. 가끔 품앗이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 아이들을 데려오곤 했지만, 엄마, 아빠를 따라  왔다 일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은 산딸기를 따다 산을 넘었다.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을 거리였다. 막막함, 울 수도 없었다. 용기를 내어 반대쪽 산딸기를 따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들은 내가 사라진 줄도 몰랐고,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88 올림픽이 끝난 후, 리듬체조에 빠졌다. 막대기에 긴 줄을 묶어 휘둘렀다. 동그라미, 나비, 여러 모양을 만들며 하루를 보냈다. 추수 철이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붉고 거뭇해지는데, 나는 배가 고프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일하는 엄마와 시끄러운 탈곡기 소리, 벼 먼지들... 바빠 보이는 엄마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나는 계속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가끔 쓸쓸할 때면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내 아이들에게는 평생 그런 장면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혼자 노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상상 속 친구들을 많이 만들었다. 상상 속 친구들은 나와 강아지들을 돌보았고, 신비한 나라로 데리고 갔으며, 악당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글씨를 읽게 된 후로는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는 것을 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일곱 살 여름,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읍’에 위치한 할머니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사하던 날, 엄마와 아빠는 이삿짐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잡동사니들을 정리하셨다. 나는 나보다 네 살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친구야, 놀자!”


대문을 열어보니, 내 또래와 비슷한 아이들 세, 넷이 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안녕?” 


 “오늘 이사왔다며, 우리는 이 골목에 살아. 우리랑 놀래?”


작은 골목길, 가깝게 붙어 있는 한옥들 사이에 살던 친구들. 친구! 나한테는 정말 꿈같은 말이었다. 그때 느꼈던 마음의 간질거림을 마흔이 넘은 지금도 기억한다. 매일 놀 수 있는 대상이 있는것.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동생과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 늘 바랬던 일이다. 지화.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 이름도 모르면서, 마을의 친구들을 몰고 와 나를 불러주었던 친구.


‘행복’이라고 느낄만한 감정이 떠오르는 뚜렷한 첫 기억.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만난 적도 없고 연락도 끊겼지만, 항상 고마운 대상으로 마음 한 켠에 존재한다. 골목대장이었던 지화에게는 지나가는 친절이었겠지만, 세상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어색했지만, 친구들은 기다려 주었다. 가끔은 그 시간이 어려웠지만, 아이들은 금세 가까워진다.


주변에 친구들이 금방 늘었다. 놀이터에는 동네 언니, 오빠들이 늘 있었다. 대장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봄이면 쑥도 뜯고 고사리도 뜯었다. 여름에는 함께 귀신이 나온다는 집을 탐험했다. 겨울에는 비닐포대를 들고 공원에 가서 종일 썰매를 타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얼굴을 늘 빨갛고, 손은 터 있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너무 위험하지만,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라던 시골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지켰던 것도 같다. 매일을 용감하게 놀았다. 


행복은 큰 성취감이나 희열감, 기쁨일 수도 있지만, 한순간 스치는 따스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작은 진심과 친절함이 이 순간 나를 만난 사람에게는 희망이나 소중한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도 있다. 


‘배가 부른 임산부의 속도에 맞추어 횡단보도를 건넌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웃집 아이들은 꼭 이름을 부른다.’ 어린 날,  친구에게서 배운, 소소하지만 다정한 노력들이, 누군가의 세상에 따스한 파동을 일으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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