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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Jul 15. 2023

유교걸, 벌꿀 오소리로 살기

벌꿀 오소리. 필요하다면, 그 작은 덩치로 곰처럼 자신보다 훨씬 큰 포식자들과 맞선다. 작지만, 끈질기고, 승패와 상관없이 덤비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든다. 

  

연수의 첫 시작에서 아이스 브레이킹 질문으로 ‘당신은 어떤 동물과 닮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동화나 그림책에서 만난 전형적인 그래서 익숙한 동물들의 특징을 사용해 빠른 속도로 나라는 사람을 알린다. 반대로 상대의 성격도 추측할 수 있다. 토끼나 강아지의 귀여움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고양이처럼 도도하지도 않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카리스마가 넘치지도 않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우연히 뜬 벌꿀오소리 영상을 보았다. 세상에 잃을 것이 없는 것처럼 상대와 맹렬하게 싸운다. 말도 안 되는 그 투지를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가정을 이루고서도 심리적 정착을 이루지 못했던 아버지 덕에 엄마는 늘 일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편모 가정’의 첫째 딸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남들도 이만큼의 아픔을 겪고 감당하며 살아왔겠지만, 내 안에는 항상 폭탄이 있었다. 

  

엄마는 ‘내 지랄맞은 성격이 아빠를 닮아 그렇단다.’ 직장 상사와 싸움이 잦아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질 못하고, 말을 참지 못해 곤욕스러운 상황에 늘 놓이곤 하셨다고. 

  

일곱 살 때 아빠에게 맞은 적이 있다. 잘못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맞은 이유는 잘못했다는 말을 내뱉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는 그 순간에도, 두려움이나 아픔보다 아빠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과 억울함이 더 컸다.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을 했다. 대문 앞에 앉아 울면서

 

“동네 사람들, 우리 아빠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때려요!” 


를 크게 외쳤다. 부끄러움에 엄마가 동생을 업은 채로 나오셔서 나를 달래 데리고 들어가셨다.

 

여덞 살, 동생을 때린 열두 살짜리 이웃 언니와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싸웠다. 아홉 살,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고, ‘오스칼’처럼 살기를 꿈꾸었다. 열두 살, 남자인 친구와 자존심을 세우다 3층에서 서로 신발을 집어 던지고, 양말만 신고 집에 왔다. 6학년, 친구가 가져온 잡지에 ‘전생의 당신은?’이라는 코너에서 혁명가라는 결과가 나왔다. 혁명가라는 단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정해진 등교 시간보다 일찍 와서 해야 하는 교무실 청소를, 여학생들만 돌아가면서 하는 것도 이상하다. 반 장기자랑 대회인 에어로빅 대회에 여학생만 참가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은 것은 더 신기하다. 교무실 청소는 전교생이 모두 돌아가면서 하게 되었다. 학급 회의를 진행해 에어로빅 대회에도 우리반은 남녀가 모두 참가하였다. 남자 담임 선생님께서도 함께 해주셨다. 

 

직장에서 후배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은 성과 잔다르크를 합친 정다르크’. 아빠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너는 할말을 다 하고 사는구나.’ 라고 말한다. 나를 아끼는 친구들은 오히려 ‘그걸 꼭 네가 말해야 하니? 너도 그냥 넘어가자.’라며 걱정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옳은 말이든, 틀린 말이든, 입에서 나가는 순간, 눈에 띄게 된다. 그 시선의 절반은 이해, 나머지 반은 오해이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최종 결정권자는 주로 집단의 권력자이자 가장 어르신인 경우가 많다. 일을 추진하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최고 어른과 의견이 자주 충돌할 때가 있다. 설득하고, 설명하는 그 반복되는 과정은 지리하다.  


 어르신들을 늘 공경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태생부터 유교걸인, 80년대 시골 출신 ‘모난 돌’은 늘 조심스러웠다. 한동안은 내 안의 의문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타인에게 상처를 줄까,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오해를 살까.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들과 혼자 하는 생각들도 검열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거나 참는 일은 오히려 어렵지 않았다그렇지만 가족이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일기에 이순신 장군이 불쌍하다고 쓴 적이 있다. 바보들 사이에서 훌륭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겠다고. 난중일기를 읽다 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문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전쟁 중에 자신이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법과 윗길의 뜻이 다를 때, 신하로서 윗길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면서 전장에서 자신을 따르는 군인들과 백성, 나라를 지켜야 하는 괴로움과 고민들. 그 괴로움과 번뇌가 이순신을 우리가 아는 단단한 성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갈등도 아니면서, 의문이 생기면, ‘원래부터 그렇게’, ‘그냥 시키는 대로.’ 가 참 어렵다. 마음속 폭탄을 가장, 절실히 외면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다. 하지만 내 마음속 경고를 무시했을 때,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클지도 잘 안다. 

  

‘The privilege of a lifetime is being who you are.’      

 영어 명언을 찾아 적어 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면서 만난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삶의 가장 큰 특권이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 특권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누리기로 했다. 중3 담임 선생님께서는 같은 교사들이 계속 근무하는 사립고보다는 교사들이 순환하는 공립학교에 가기를 조언하셨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홀로라는 사실은 외로움만큼 해방감도 주었다.

 

학생들과 토론을 할 때면, 영화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을 짧게 보여준다. 1950년대, 흑백 영화, 10분을 넘기면 조는 친구들이 생긴다. 모두가 흑인 소년이 유죄라고 결론 내린 상황, 12명의 배심원들에게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 8번 배심원이 없었더라면, 아이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토론을 단순히 이기기 위한 말싸움이나 논리 싸움으로 생각하지 말자세상사에 완벽한 결론이 있을 수 있을까토론은 완벽한 결론이 아닌 조금 더 올바른 결론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그 시작은 단 한 명의 의문일 수도 있다우리가 그 8번 배심원이라면내 안의 의문을 따라옳다고 생각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남편은 말한다. '그 곳에 미친 사람이 필요하면, 그냥 네가 해라.'

 문제를 털어놓고, 나에게 기대는 사람이 늘어난다. 어른들도 나를 불러 의견을 묻는다. 어떤 집단이든 질문하는 벌꿀오소리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도 일렁이는 내 마음 속 의문을 품는다. 백 번 생각하자. 천 번 고민하자.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라면, 질문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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