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리 Jun 18. 2023

엄마 나는 용가리 치킨 좋아했어




어느 날 언니가 용가리 치킨이 맛없다고 말했다. 냉동식품 맛이 나고 별로라고 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출시된 공룡 모양의 용가리는 크런치 느낌의 쪼몰쪼몰한 튀김옷을 두르고 있는데 이것이 튀기면 그렇게 바삭바삭할 수가 없으며 샛노오란 머스타드를 찍어먹으면 달콤새콤하니 물릴 새 없이 들어가고, 한 마리는 꼬리부터 베어먹고 한 마리는 짧은 다리부터 야금 베어먹기도 하는 먹는 재미까지 곁들인 (그때는) 냉동식품계의 핫템인 그 용가리가 맛이 없다니!!!


누가 봐도 말랐음 체형의 소유자인 언니는 음식을 먹는 것에 크게 흥미가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 코피를 자주 흘렸다. 나는 누가 봐도 통통함 체형의 소유자인데 깨끗이 안 씻어서 옮았을 것이 분명한 홍역이나 아폴로 눈병 같은 전염병 빼고는 잔병치레 따위 없이 잘 컸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엄마는 나보단 언니에게 더 많은 관심과 신경을 쏟았다. 아마도 그날, 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할 것이다. 엄마는 용가리치킨을 더 이상 사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용가리치킨과 한순간에 이별 당했다...


보행기에 앉혀놓으면 하루 종일 울지도 않고 잘 노는 아이.


엄마는 아주 아기일 때의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기억에도 없는 아기의 나는 충분히 그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완전히 집순이+isfp로서 마음은 놀고 싶지만 누군가에게 절대 먼저 놀자고 하지는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아주 아기의 나도 엄마랑 놀고는 싶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칭얼대거나 울어버리거나 그러지 않았을 듯싶다. 용가리치킨도 그랬다.


어느새 나도 머리가 크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인격이라는 게 형성되어 갔을 때쯤 갑자기 엄마에게 “엄마는 언니만 좋아해”라고 말했다. 엄마에게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돌발발언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나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미숙했고, 엄마는 본인이 언제 그랬냐며 일단은 나의 의견을 부정했다. 그래도 그 이후에 엄마는 얘가 그런 말을 했다고 투덜거리며 몇 번은 나를 더 챙겨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더 어른이 되어서는 그때의 엄마도 지금의 엄마도 오늘 하루가 낯선 사람일 뿐이며, 언니와 나에게 주는 사랑의 모양이 다른 것이었을 뿐인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어른이 되어서도 언니네 집 냉장고에는 냉동만두나 떡볶이, 쭈꾸미볶음 밀키트가 주 식재료인 반면에 나는 어제도 바나나와 케일, 아보카도를 갈아서 스무디를 해 먹었으니 아직도 엄마가 언니에게 더 큰 관심과 신경을 쏟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아니 이제는 엄마도 나와 똑같이 누군가에게 채움 받고 싶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엄마가 소풍 때 싸주던 친구들에게 늘 칭찬받았던 오밀조밀한 김밥은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않아도, 내가 저번에 말아준 들기름김밥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나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미숙했고 그것을 잘 수용받지 못했던 경험이 쌓여 어른이 되어서 맺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여러 번 망치게 했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서 알아차려주길 바랬고,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그것을 분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뭔가를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도 일단은 부정하기 바빴다.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보다 문제에 대한 핑계나 이유를 찾아내 상대방이 그것을 수용하기를 바랬다.


용가리치킨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자리 잡고 남아있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용가리치킨을 좋아했는데.. 그때 용가리치킨을 더 이상 먹지 못한 나는 참 안 됐다. 그때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채워지길 바랬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해 마음속으로 슬펐을 것이다. 주범은 용가리치킨이다. 반드시 그때의 나나 엄마의 잘못이라고 지금의 나는 탓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는 나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늘 사랑받고 싶어 했던 사람임을 거슬러 들여다본 것으로 후련한 마음이었다. 이제는 걷든 뛰든 네 발로 기어다니든 스스로 서야 할 나이기에.


스팸을 잘라 굽고 옛날 도시락 느낌으로다가 김치를 참기름에 볶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인 된장찌개 국물을 몇 숟가락 밥 위에 찹찹해서 계란 후라이까지 야무지게 올려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총출동시켰다. (성인이 되어 먹어본 용가리치킨은 이제는 낫마이 스탈이라 맛없었다.) 엄마 생각에 집에서 먹는 혼밥이었어도 도시락에 담아먹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늘 손수 밀계빵을 묻혀 돈까스를 만들어줬었는데 도시락에 돈까스반찬이 들어있던 날은 아주아주 행복했다. 그때의 엄마는 돈까스소스라는 것도 몰랐다. 오뚜기 케찹에 찍어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던 엄마의 돈까스다.(그래서 지금도 나는 케찹을 좋아한다.) 엄마가 해준 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말해볼까. 99%의 확률로 해주지 않을 우리 엄마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 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