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우니 오지 말라는 말에도 집을 나섰다. 회사에 쌓아두고 있던 명절용 선물로 받은 카놀라유와 참치, 스팸 등을 이제는 진짜 옮겨야 해서 엄마집에 가져다준다는 명목하에. 사실은 엄마가 조금 보고 싶어 나섰다.
전날부터 몇 시쯤에 올 거냐 묻더니, 당일 오후 세시가 넘어도 얘가 출발할 생각이 없어 보여 엄마도 그제서야 오지 말라는 말로 바꾼 거라, 엄마나 나나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엄마 말대로 밖은 완전 찜통이고, 나는 만두였다.(요즘 날씨에 내가 맛들린 표현이다) 카놀라유 군장을 매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버스를 기다렸다. 이제 강남 끄트머리에서 엄마집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언가를 얻었어도 무언가는 잃었겠구나. 어깨의 짓누름 버티고 버스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는 잃은 것은 그냥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집에 오니 엄마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친구들 모임도 마치고 집에 있다고 해서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누워있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어째 데릴러온다더니 소식도 없었다 했다. 밖에 완전 더워! 카놀라유 진짜 완전 무거워! 못 갖고 와 이제! 전리품처럼 늘어놓고 엄마라고 투정부터 부렸다.
디스크 병원에서 준 약 때문에 그런가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말려했는데, 그래도 엄마 눈이 콩알만 할큼 얼굴이 부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젯밤부터 한쪽 어깨가 푹 내려앉듯이 아프고 하루종일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체했고만! 엄마손 엄지와 검지 사이 넓적살을 주물주물하니 반응이 온다. 체했으니까 머리가 아프지! 편의점 가서 까스활 한 병 먹으면 금방 내려가! 소화제 없으면 약국 가서 사 온다고 다른 거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 했더니, 그제서야 소변이 잘 안 나온다 고백한다. 그건 방광염이네! 면역력이 떨어져서 방광염에 걸렸고만!
혹시 방광염이 아닐까요? 추정적 나의 진단에 아랫배가 묵직하고 하체에 힘이 없다는 엄마의 말을 전했더니 약사님은 방광염이 맞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머리가 좋은 언니는 어느 쪽을 닮았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일 정도로 우리 엄마아빠는 기민하지 못하다. 특히 엄마는 아프다는 걸 잘 못 느끼는 건지 그만큼은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지, 솔직히 너무 바보같아보일 정도로 모른다. 그것이 참 속상하다.
그래서 방광염약도 먹고 까스활도 먹고 머리가 아파 타이레놀도 먹고도 계속 열도 나는 건 왜 그러냐고 하기에, 엄마폰으로 네이버에 “방광염 열” 을 검색했다. 방광염 걸리면 온몸에 오한이 오고 열도 나고 두통도 있다네! 네 글자만 두드려 보면 쉽게 아는 것을 왜 아픈지 이유도 모르고 버티고 있을 것이 참으로 또 속상하다.
가끔 이렇게 엄마가 본인밖에 모르는 아픔을 혼자 참고 있다거나, 아빠가 영문 없이 삐졌다거나(조금은 예상 가능), 뜯긴 돈은 어떻게 받아내냐고 할 때마다, 그래도 잘 살고 있어 다독이는 나를 이 세상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여지없이 찾아와 쿵 누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세상은 커져버린다. 내가 가진 것들도 똑같이 작아져버리고 나는 아주 작아져있다. 더 많이 가져야 할 것 같고 더 많이 모아둬야 할 것 같다. 더 많이 욕심내고 싶진 않은데 더 욕심내 거두지 못한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더 열심히 살기 싫은 나를 모른 척하고만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고 , 더 열심히 어떻게 살 건데?!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건 힘을 내, 용기 내 사랑을 전하는 것뿐이다. 냉장고 속 잡채도 데우고 설거지도 한다. 끝난 빨래도 널고 아빠한테 하드 사 먹으러 같이 나가자고 해본다. 일요일에는 꼭!! 늦잠을 자야 하니 나는 깨우지 말라 하고 볶음밥을 해놓는다고 약속했다. 이 시간에 그걸 한다고? 말이라도 그렇게 해준 엄마는 냉장고에 양파 까놓은 거 있다고 슬쩍 끼워 말한다. 스팸도 썰고 양파도 썰고 계란도 풀어 내가 자주 해 먹는 계란 볶음밥을 했다. 혼자 먹는 양이 아니라 맛을 내긴 어렵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 맛있게 드셔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짠 것은 회생불가라 맛이 조금 싱거운 것 같긴 한데, 우리 아빠가 팩트폭행만 참아주면 아주아주 뿌듯할 테지만 내일은 어떤 기분일런지 아리송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