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글몽글 순두부 서점 -1
아마도 큰 대로변은 아닐 테지만, 그때까지도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 여태 비어있는 새로 들어선 아파트의 1층 통유리 상가 중 작은 공간을 얻게 된다면 아주 운이 좋은 것일 테지요. 사람들이 오며 가며 한 번쯤은 들여다봤을 휑한 곳이지만, 제가 이곳을 알기 전부터 어떤 공간이 들어설지 언젠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기다림의 시선이 묻어있는 공간일 겁니다.
간판을 크게 달지 않아도 통유리창으로 비춰지는 책들을 보고서 서점이 들어오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먼저 찾아주면 참 좋겠네요. 생각보다 작은 공간에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어렵다면, 유리창에 붙여있는 인사메시지를 닫힌 가게 앞에서 몰래 읽어주셔도 좋습니다. 책 한 페이지를 찢어놓은 크기의 흐끄므끄한 갱지에 제가 서점을 열기로 마음먹었던 순간들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남겨놓을게요. 제가 누구인지 조금 먼저 아시게 된다면, 저의 서점의 친구가 되어줄 용기를 조금은 마음먹게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아니면 카페인 줄 알고 들어오셔서 커피 한잔을 시켜주세요. 커피가 내려질 동안 가게 안을 힐끔힐끔 구경하셔도, 네모난 원목 테이블에 놓여진 책 표지들을 슬쩍슬쩍 들춰보셔도 좋습니다. 가지런히 제 모습 그대로 놓여진 책들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 그 순간만큼은 걱정이나 할 일의 먼지들이 그대로 마음속 웅덩이 안으로 가지런히 가라앉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러기를 저도 바래봅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오신다면 아기자기한 서점 분위기와 맞지 않아 보이는 중년 남성 한분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놀라실까 봐 말씀드려요. 아마도 아직까지도 늦잠이 필요한 딸을 위해 뭐든지 부지런한 저희 아빠가 서점 문을 열었나 봅니다. 하지만 얼렁뚱땅인 저보다 손은 야무지시니 늘 일정한 그 맛의 커피가 목적이시면 아침 시간을 노려보세요. 오랜 기간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하느라 손이 두껍고 뭉툭해진 아빠를 위해 굵기와 무게가 있는 하얀 도자기 잔에 커피를 담아 내어드릴게요.
넓적한 라떼잔에 담긴 검은 커피를 한 모금-, 오늘 저도 아빠가 내려준 커피로 하루를 엽니다. 확실히 아빠가 내린 커피는 더 고소하고 정돈된 맛이에요. 허투루 하지 않으려는 진심이 담겨있달까요. 커피 한 잔에 담긴 건 출렁출렁 안도 들여다보이지 않는 시커먼 물 뿐인데 서로가 느끼는 그 정도가 다르니 참 신기한 음료란 생각을 합니다. 이른 아침 서점에 오시면 오늘 하루를 깨어줄 마법의 물약을 타서 드릴게요. 서로가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나만의 하루이니 온전한 오늘의 커피를 마주하는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