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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Jul 30. 2023

마음의 모양

몽글몽글 순두부 서점 -3



책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분명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건 좋아하는 감정이 맞을 것 같은데, 대체 왜? 언제부터? 내가?! 하는 거에요. 청진기를 가슴에 대어도 이상있는 소리가 들릴 것 같진 않았고요. 생각만으로 달아오르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지요.


새로 이사 온 집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 시작했을 때쯤 엄마에게 그냥 무턱 말했거든요. 엄마 나 작가가 될까봐. 여느때처럼 그냥 회사가 다니기 싫은 딸의 오늘의 투정 할당량으로 치부됐어야 했는데, 그래! 나는 우리 딸이 작가가 됐으면 좋겠어! 엄마가 그날따라 이상하게 내내 기다리던 말을 들었던 것처럼 망설임도 없이 환하게 웃어버리지 뭐예요. 아직도 사랑이 필요한 아이처럼 엄마의 그 미소를 기억해버렸어요. 엄마 한번 더 그렇게 웃어줄 수 있어?


그때부터 저는, 우리 사이가 아주 오래전부터 운명처럼 이어져왔을 이야기였을 지도 모르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했어요. 시간을 거슬러거슬러 올라가 어렸을 적 동네책방에 언니랑 드나들던 기억까지 떠올리면서, 그래 나는 그런 아이였는데-! 그 아이를 다시 찾아야해,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만나러 갈래. 지금의 나는 길을 잃은게 아니라 다시 돌아가면 그뿐이라고, 마음의 큰 상처 하나 없는 꼬마의 나로 도망가는 길을 택했죠.


먼저는, 책을 읽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읽고 싶을 법한 책을 읽었어요.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슬라이딩도어의 맨 처음부터 맨 아래까지의 모든 책을 빠짐없이 읽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건지 올려다보던 아이처럼요. 이제는 마법같은 장면을 꿈꾸지 않았어도 어쨌든 글자 위에선 누구 하나 남에게 큰 상처를 주지도, 남에게 큰 상처를 받는 일도 없었으니 글자를 따라 걷는 책 속의 평화를 다시 사랑했어요.


언제부터였는지나 이유를 찾는 것보다 의미있는 것은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에 있었어요. 그리고 소녀처럼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알고나면 더 좋아지고 왠지 더 부끄러운 짝사랑으로 이름을 짓고 가보리라 마음 먹었어요. 페이지를 넘기며 밀려오는 고요와 무해함으로 나를 감쌌어요. 또 페이지를 넘기며 바다를 담았어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는 제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모양인거에요. 어떤 것도 제 마음을 그렇게 한 게 없었거든요. 그게 책이라는 게 참 좋았고요. 마음이 그런 모양이란 건 마음에 꼭 들었어요.


당신도 혹시 그럴까요? 아니면 손님은 어떤 모양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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