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히 넘기는 것들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꽂힐 때가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유난히 잊히지 않고 내내 기억되는 어떤 순간, 문장, 냄새, 말투 등의 것들이 있는데, 문득 내가 기억하는 그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 지곤 한다. 혹시 기억하나요? 한 때 대한민국에 '아나바다' 운동이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정부 차원의 캠페인이 있었던 그때가 1997년 즈음이었으니 늙은(?) 나만 기억할 뿐 젊은 그대에게는 금시초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는 나도 어렸다. 철없이 어려서 '아나바다 운동'의 진정한 의미나 IMF 외환위기를 지나는 국가적, 대국민적 고뇌 같은 심오한 의미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저 네 글자 준말인 '아나바다'의 어감이 참 예쁘고 시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유야 어쨌든 그 시절 내가 꽂혔던 그 예쁜 네 글자의 인상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살아가면서 조금만 연상되는 상황을 마주해도 종종 그 이름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캐나다로 온 후 이곳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어느 날에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 캐나다는 아나바다의 천국이구나!'
캐나다는 정말 그렇다. 정부가 추진하는 캠페인 따위는 없는데도, 부자나 가난한 이나 약속이라도 한 듯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쓴다. 캐네디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처럼 검소한 그들의 생활 모습은 캐나다의 역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캐나다에 본격적으로 프랑스와 영국 사람들이 넘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1600년대, 몇 번의 전쟁 후 비로소 캐나다 연방이 설립된 것이 1800년대 후반이니 캐나다의 역사는 생각보다도 훨씬 짧은 200년 남짓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땅에 빈손으로 와서 돌과 풀뿐이던 황무지를 개간하고 새 삶을 시작한 1세대 개척자들은 가깝게는 나의 엄마의 엄마, 멀어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인 증조할머니 대라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이들의 검소함, 아직 쓸 수 있는 물건은 나의 용도가 다해도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나눠 쓰는 그 마음이 멀지 않은 이들의 과거에서 이어져 왔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요즘 한국에서도 '당근 마켓'이 유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 그에 대해 들었을 때 꼭 아나바다운동의 자본주의적 진화 버전처럼 느껴졌다. 여러 가지 장단이 존재하겠으나, 멀리서 고국을 지켜보기로는 이제 한국에서도 바꿔 쓰고 다시쓸 수 있는 장이 펼쳐진 듯해서 흐뭇하다. 한국은 산업이 발달해서 생산되는 거의 대부분 공산품의 질이 세계 어느 나라에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난히 유행에 민감하고 감각적인 데다가, 다른 사람의 시선도 꽤나 신경 쓰며 살아가게 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멀쩡하거나 심지어 훌륭한데도 버려지는 물건이 꽤나 많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늘 안타까웠다.
내가 살던 약 10년 전의 한국에도 '아름다운 가게'처럼 중고 물품을 파는 상점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인 중고품에 대한 인식이 그리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가끔 중고가게에서 놀라운 가격으로 구매한 물건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면 '뭐 그런가?' 정도가 긍정적인 반응이었을 뿐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도 '굳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을 기억한다.
10여 년 전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나처럼 캐나다생활 새내기인 한국인 친구가 임신을 했다. 친구 앞으로 한 친척분이 본인의 아이가 사용하던 아기옷들을 보내주셨고 마침 친구를 방문했던 나는 그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봤다. 상자 안 아기 옷은 한눈에 중고인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의 것들이었는데 여기저기 얼룩도 보였고, **조리원 등의 로고가 선명한 옷들도 있었다. 말없이 보내주신 아기옷을 꺼내보던 친구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어쩜 다 그렇게 쓰던 옷들만 보내주셨냐며, 가난한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고 속상해했다. 그땐 나도 덩달아 속상해져서 다음 날 없는 돈을 긁어모아 예쁜 아기 옷을 몇 벌 구매해 다시 친구를 찾아갔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가끔 중고매장을 이용했던 나도 실은 중고물건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익숙해진 중고 물건 거래는 캐나다에서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지만, 거래를 하다 보면 캐네디언들과 거래할 때는 잘 볼 수 없는 한국인 특유의 특징이 나오는데 그게 참 재미있다. 얼마 전 아이의 한국책들을 정리해서 온라인 중고 매장에 내놓았다. 한국책이다 보니 한국분에게서 연락이 왔고 마침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학부모님 이셨다. 워낙에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지라 아는 분께 돈을 받기도 뭐 하고 평소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기에 값은 치루지 마시고 아이들 선물로 그냥 가져가시라고 메신저를 보내 놓았다. 사양하는 몇 번의 문자가 오고 갔고 오늘 아침 내가 없는 시간 물건을 픽업하신 그분이 문자를 남기셨다. "그냥 받기는 제 마음이 그래서, 서점 상품권을 두고 갑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사주세요." 하는 문자였다. 내가 내 마음만 생각하고 오히려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구나 싶어 죄송한 마음, 감사한 마음과 함께 '그분도 나도 참. 한국 사람들이란.' 싶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한국의 당근마켓 거래는 어떤 모습일까? 금전 거래에서 만큼은 가족끼리도 칼 같은 외국인들과 거래하면서는 경험할 수 없는 참 복잡하면서도 훈훈하고, 비효율적이면서도 정겨운 한국인의 모습이지 않을까? 본품만큼 쓸만한 덤도 막 끼워주고 사정얘기하면 값도 막 깎아주는 그런 시장을 상상해 본다. 외국 나와 살면 다 애국자 된다더니 상상 속의 내 나라는 중고 시장조차 온통 정겨운 모습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