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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Jan 26. 2023

해맑음

자녀교육


“저거 너무 한 거 아니야?”


와이프가 아이들을 보며 나에게 한마디 한다.


아이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첫째와 그 옆에서 옆돌기를 하고 있는 둘째.

두 시간째 멈추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는 별 것 아닌 유치한 장난을 하며 자기들끼리 웃겨 주겠다며 깔깔 거리며 웃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딸아이들인데 하는 행동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나 볼 수 있는 행동을 한다.

특히나 우리 애들이 웃을 때 내는 소리는 3-4살 아이들이 깔깔대며 내는 웃음소리와 유사하다.


“좀! 당신이 가서 뭐라고 좀 해 봐! 해도 해도 너무한 거 같아. 다른 집 애들도 저렇게 미친 듯이 떠드나? 정신 나간 애들 같아.”

 

“좀 심하긴 하네. 그래도.. 해맑아서 좋지 않아?”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휴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고등학생 때 친구가 생각이 난다.




고등학생 시절.


그래도 제법 머리가 큰 편이라 더 이상 어린애처럼 놀지는 않던 시절이었는데, 반에 한 명. 초등학생과 같은 해맑음을 간직하던 친구 A가 있었다.


A는 쉬는 시간마다 교실 맨 뒤에서 WWW(WWE인가?)를 보고 프로레슬링을 따라 했었는데, 보통 쉬는 시간의 맨 뒷자리는 나름 일진(?) 애들이 노는 공간이라 다른 친구들은 그 장소에서 놀지 않았는데, A만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쉬는 시간마다 그 장소에서 미친 듯 프로레슬링의 장면을 따라 하곤 했다.


일진이라 불리던 친구들 역시 A가 자신들의 구역(?)을 침해하며 노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하지 않았고(다른 친구들에게는 시끄럽다고 딴 데 가라고 했던 것도 같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 가끔 A와 이야기를 할 때도 평소와는 다르게 얼굴에 힘을 빼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30년도 더 된 이 당시.

공부 잘하는 애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끼리, 일진은 일진끼리, 또 나머지는 다른 비슷한 특성에 따라 그룹을 지어 놀았던 것 같은데, A는 공부도 잘하지도 못했고, 일진도 아니었고, 다른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음에도 어느 그룹에건 잘 속해서 놀았고, 다른 친구들도 이 친구와는 진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냥 함께 있으면, A에게서 느껴지는 너무도 맑은 기운에 어린 시절이 생각나며 무장해제가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버릇이 없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어서, 어른들에게는 엄청 깍듯했었다.


단지 당시는 공부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시절이다 보니, 공부를 못하는 그 친구의 존재감이 크지는 않았었다.


권위적이던 아버지와 무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나는 내 감정을 100% 표현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그 친구의 해맑음이 부러웠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친구들은 다 비슷한 부모님을 두고 있었으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그때 ‘나중에 애를 낳으면 저렇게 해맑게 키우고 싶다..’ 란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애들은 낳았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을 잃고 살았는데, 육아휴직 때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가끔 나곤 했다.


아빠와 함께 집에서 놀면서 점점 밝아지는 아이들을 보다 보니, 고등학생 시절 그 친구가 생각이 났고, 우리 애들을 그렇게 해맑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친구처럼 아이들과 놀아주고 대화를 들어주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고, 내 노력에 응답하듯 우리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만큼 해맑게 자라고 있다. 어른들에게도 깍뜻함은 물론이다.


 



 

“아빠. 이리 와 봐!”


아이의 부름에 잠시의 추억에서 돌아온다.

둘이서 잘 놀던 아이들이 나를 오라고 재촉한다.


뉴진스의 신곡에 맞춰 춤을 연습 중인데 같이 해보자고 한다.


“야. 너네 둘이 지금껏 계속 췄잖아. 둘이서 춰! 갑자기 아빠는 왜?”


“아니, 둘이 추다 보니 이젠 좀 심심해. 아빠도 같이 해.”


싫다고 하는 나를 두 명이 붙잡아 끌며, 굳이 거울 앞에 세운다.

거울 앞에 서서 세 명이 함께 뉴진스의 신곡에 맞춰 춤을 춘다.


처음 해보는 동작이기에 당연히 춤을 따라갈 수 없다. 아니, 100만 번을 췄더래도 할 수 없는 동작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동작 하나하나 핀잔을 주며, 나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고 있다.

불과 10분도 안 되어 온몸이 쑤시는 듯하고, 잔소리를 1,000번은 들은 것 같은 느낌이다.


“아빠 안 한다고! 좀 냅둬!”

제법 큰 소리로 권위적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빠의 말에 그 흔한 ‘움찔’ 한 번 없이, “싫은데~ 내가 왜? 얼마 줄 건데?~”라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계속 춤추기를 강요한다.


‘아… 해맑게 키운다는 게 좀 과했나?’


내 교육방법.

특히나 아빠와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후회가 든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교육관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체력이 달려 온 삭신이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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