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회의
회의다.
요새는 가급적 회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중이긴 한데, 과거에는 하루에 4-5개 회의를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면 이 회의의 주제가 뭔지 다른 회의와 얽히고설켜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했는데, 오랜만에 회의를 들어와 보니, 역시.. 회의의 목적이나 의도도 모르고 들어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많이 하는데..
도대체 그래서? 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도 않고, 본인들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직급이 높은 사람일수록 회의와 상관없는 말을 툭툭 내뱉고는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망신을 당했을 테지만, 고위급 임원들이 회의와는 상관없는 아무 말을 이야기할 때에는 아랫것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한다.
(알아보긴 뭘 알아봐? 자기도 무슨 소리하는지 모를 거다. 회의실 나가면 바로 잊어버린다에 내 손모가지를..)
음..
쉽게 이해를 시키고자, 한 번 예를 만들어 본다.
(어떤 예가 적절할지, 나름 한 참 고민을 해 보았다.)
A회사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참석자들의 1/3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고위급 임원들이고, 나머지는 그보다 낮은 레벨의 임원, 팀장급이거나 실무자 등이다.
회의의 주제는 ‘고령화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질병에 걸릴 걱정을 하는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개발’이다.
대한민국은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기에 노년의 삶에 대한 걱정이 많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으나,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기간 또한 늘어났다. 특히나,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노인들의 질병에 대한 우려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다.
그래서 회의는 이런 노년층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덜어줄 수 있는 제품의 개발이다.
다들 이런저런 우리나라의 노인층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누다가, 최고 레벨의 임원이 한마디 한다.
“아니, 왜 이렇게 다들 부정적이야? 요새 노인들이라고 다 아프고 힘이 없고 걱정만 하는 줄 알아? 나 봐! 내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나만 봐도 매주 골프를 쳐! 나이 많다고 아파서 힘없을 거란 생각들은 그만 좀 해! 틀에 박힌 관념을 좀 벗어나보라고! 노인들도 액티브함을 즐겨야 건강해지는 거 아냐? 골프! 스키! 엉? 아니 클라이밍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이런 걸 할 수 있는 건강한 노년을 생각하고 제품을 생각해 보라고! 쯧쯧.. “
회의는 처음과 다르게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노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제품의 개발에서, 활기찬 삶을 사는 노인들에 대한 주제로 바뀐다.
갑자기 노인들을 위한 비타민, 건강증진 프로그램, 레저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또 최고 레벨의 임원이 끼어든다.
“이 사람들.. 먹는 거! 운동! 이런 거 말고! 내가 골프를 치러 가면 그냥 가나? 백화점에서 좋은 명품 골프웨어를 수시로 본단 말이야! 노인들일수록 자기를 꾸며야 한다고! 무슨 비타민에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그건 기본적인 거고! 생각들이 다 고리타분해. 그러지 말고, 노인들이 운동을 할 때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운동화나 신축성 있는 의류! 이런 걸 생각해 보란 말이야!”
회의는 노인의 질병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는 제품에서 비타민, 건강증진 프로그램으로 확장되다, 노인을 위한 명품 의류로 발전이 된다.
그렇게 미팅에서 결국 확정이 된 제품은 ‘세련되고 건강한 노인을 위한 신축성 있는 명품 액티브스포츠웨어’이다.
갑자기 회의에 처음 참석하여 누군인지도 잘 모르겠는 까마득히 어린 한 직원이 감히 최고 권위자에게 말한다.
“저.. 저기..”
“왜? 뭐?”
“저… 저희는 보험회사인데요…? 특히나 질병을 보장해 주는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이거 봐봐! 어이. 여러분들! 저 젊은 친구가 하는 말 들었어? 우리 회사가 너무 틀에 박혀 있으니, 젊은 친구조차 사고가 굳어있잖아! 그러니 우리가 발전이 없는 거야! 그런 틀에 박힌 사고! 그걸 깨라고! 보험회사에선? 엉? 옷 못 만들어? 왜 생각의 전환을 하지 못해! 이래서 이런 경쟁시대에서 살아갈 수 있겠어?”
노발대발하는 최고레벨 임원의 한 마디에, 젊은 친구는 입을 꾹 다문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애당초 토를 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험회사 직원들은 액티브스포츠웨어 제품을 개발한다.
결과는?
뭐..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회의
왜들 그리 말들이 없어?
뭐가 문제야 say something
분위기가 겁나 싸해
요새는 입 다문게 유행인가
왜들 그리 굳어있어?
여기서 나만 말하네
Tell me what I want to hear
급한 대로 입들 좀 열어
아무 말이나 일단 해봐
아무거나 나 듣기 좋은 말로
아무렇게나 말해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아무 생각 하기 싫어
어제먹은 술이 안깨
I’m sick and tired of my everyday
Keep it up 한마디 더
아무 회의나 일단 잡아 봐
아무렴 어때 it’s boring
아무래도 refresh가 시급한 듯해 쌓여가 스트레스가
기분이 풀릴만큼만 떠들고 싶은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