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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Feb 09. 2023

B급의 삶, 그것도 나쁘지 아니하다.

몸에서 살.. 아니, 힘 좀 빼고 살아보자


회사에서 동료 중 한 명이 이야기를 한다.

 

“B밀님, 저 살 진짜 많이 빠지지 않았어요?”

 

“너? 요새 많이 빠졌어?”

 

“아. 뭐예요. 2달 동안 7kg이 빠졌어요.”

 

동료가 보여 준 건강체크 어플을 보니, 하루에 2만에서 3만보를 2달 동안 걸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들 살이 왜 이렇게 빠졌냐며 한 마디씩 한다는데, 나는 못 알아본다고 섭섭함을 토로한다.

매일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이기에, 그 친구가 조금씩 살이 빠지고 있음을 나는 잘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의 나와 육아휴직을 다녀오고 난 후의 내가 너무 다르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 달라짐을 크게 느끼지는 못한다.

 

물론 나 자신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바뀌었고, 그게 2년에 걸쳐 진행되어 오다 보니 ‘과거의 내가 어땠었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정부터 챙기고,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말하고 놀아주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유가 생기고.. 기타 등등..

이제는 예전의 내가 현재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렇게 글로 써야만 인지할 뿐, 과거의 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동료의 다이어트 이야기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다가, 잠시 자리에 앉아 나의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나름 자부심도 있었고, 금융회사에 다니며 다른 사람보다 급여도 좀 많았을 수도 있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성공의 라인을 타고 올라가는 느낌도 맛보았다.

 

문제는.. 나는 특별한 인간이다 생각하며, 조금만 더 노력하면 A급 인생을 살거라 착각하며, 미친 듯 노력했으나 실제 내 현실은 B급? 아니면 C급의 삶이었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단 한 번도 여유 있다고 느끼며 살아본 적이 없으니 B급의 삶이요, 가정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어느 곳에서도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으니 C급의 삶이다.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내 현실은 모든 것이 암울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 복귀하여 지내고 있는 현재까지 내 삶은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일단, 나 스스로 A급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별로 아쉬워하며 살지를 않는다.

내가 나온 학교, 내가 다니는 직장.

이 모든 것에 이제는 별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다. (이거..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 어려운 거다. 내 살아온 과거를 부정한다는 것은, 특히나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을 경우.. 스스로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의 삶은 ‘나’나 ‘가정’이 아닌, ‘회사’를 잘 되게 만들까를 고민하던 삶이었으니, 잘못된 방향성으로 달려가던 삶에 일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잡스러운 공상을 하며 살곤 한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쓸데없는 공상이다.

인생이 항상 진지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가볍고 편안하며 진지함이 일도 없다. (약간의 과장은 있다. 어찌 사람이 진지함이 일도 없을 수 있겠나..)

처음엔 변해버린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고 의아해했었는데.. 이제는 맘 편히 쓸데없는 공상을 하는 지금의 여유 있는 삶이 훨씬 더 좋다고 느끼며, 내 머릿속에 뒤죽박죽 드는 생각들을 나름 즐기고 있다.

 


20대 후반부터 잘 살 거다라며 죽어라 노력해 왔던 20년간의 내 모든 ‘피’와 ‘땀’은 나에게 쥐꼬리만 한 자산과 대화가 단절된 ‘불행한 가정’을 형성하게 만들었지만, 육아휴직을 하며 내 관심이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 즐거운 마음으로 투자도 시도해 보고, 취미도 가져보고, 가족들과도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요새와 같이 현실과 동 떨어진 공상도 하며, 몸에 살.. 아니, 힘을 빼며  지난 2년 정도의 기간은 20년간 형성해 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것(행복한 가정, 와이프와의 두터운 애정과 전우애(?), 다가오지 않던 아이들과 거리낌 없는 대화, 제법 괜찮은(소박한 나의 기준이다) 자산 형성, 다양한 취미 생활, 부모님과의 화해.. 등등)으로 나에게 보답해 줬다.

(물론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노력은 했다. 단지 회사에서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도도 낮고, 즐거워서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을 뿐이다.)

 

힘을 빼고 산 삶이 나에게 준 것이 훨씬 더 많기에,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 회사원으로서의 삶, 무엇보다 타인의 생각에 따라 휩쓸려 가는 삶에 내가 가진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요새 서점에 가서 자기 개발서를 보면, 이제는 한 장만 넘겨도 숨이 막혀온다.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고(아.. 이건 가능하겠다. 나이를 먹어가며 잠이 없어지니..), 나를 계속해서 채찍질해야 하고, 가정의 미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현재 가정에 소홀해야 하고.. 물론 나 역시 육아휴직 기간 읽었던 자기 개발서 중 몇 권에 큰 감명을 받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는 힘들어서 못 살겠다.


 

B급의 삶.


내가 말하는 B급의 삶이란, ‘나를 좁은 틀 안에 가두어 그 작은 울타리 안에서 악착같이 노력하게 만드는 삶이 아닌, 한 걸음 물러나 여유 있게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걸 즐겁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B급이라 했지만, 이 삶을 사는 현재의 나는 ‘A급 삶을 꿈꾸었던 C급의 삶’보다 몇 배는 행복하다.



잘 살고 있는 거 맞지?


그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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