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동네 한옥식 주택은 한낮에는 긴 햇볕이 들어와 마루를 데우고 마루의 문을 열어 두는 여름날에는 참새들이 가끔 집안으로 날아드는 곳이었다.
미로 같은 골목길 속에 검은색 철창 모양의 쇠 대문을 빼곰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로는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보이고 옥상에 널어 둔 빨래는 그네를 타듯 바람에 흔들려 그림자가 드나든다
고요한 이 시간에 지금쯤 안주인은 무얼 하고 있을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는 안방에서는 뜨거운 아랫목에 메주를 띄우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이 나고 슬레에트 지붕을 뚫고 얼굴을 내밀어 한밤에 경악을 하게 했던 쥐도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쥐구멍을 막기 위해 벽지를 덧붙이고 했지만 하루도 못 지나 그들은 쉽게 구멍을 냈고 천장 위를 밤새도록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리 두껍게 겹겹이 발라도 종이는 시멘트가 될 수 없었다
이런 날은 엄마 옆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빠와 둘이 눕기에도 좁은 방에 비집고 들어가기엔 나는 어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방은 밤마다 공포스러운 곳이었다
쥐 소동은 할머니가 나가시고 슬레이트 지붕을 바꾸면서 끝이 났다
안방에는 사람만 바뀐게 아니라 냄새도 바뀌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엄마는 십 년 동안 자기만의 방이 없었고 비좁아 터진 작은방에서 아빠와 잠을 잤다
열두 자짜리 장롱에 화장대까지 겸비한 안방의 주인은 아들을 둔 할머니였다
엄마 방에는 할머니 방처럼 화장대가 없었다. 손잡이가 달린 원형 거울이 못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 화장품 몇 가지가 전부였다
엄마 방에서는 콜드크림 냄새가 났고 그 냄새는 엄마의 냄새였다. 안겨 있으면 잠이 오는 그 냄새.
십 년을 쪽방 신세로 지내다가 할머니가 삼촌 집으로 가게 되면서 엄마의 방이 생긴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긴 자기만의 방이었고 할머니가 두고 간 장롱과 화장대를 엄마는 닦고 또 닦아 광이 날 지경이었다
매일 아침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빗던 할머니를 보다가 사람만 바뀐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엄마가 처음에는 어색했다
큰 거울 앞에 앉아 요리 조리 얼굴을 돌리며 머리를 빗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화장대 위엔 엄마의 화장품들이 있었고 옆에는 레이스 받침대 위에 빨간색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전화를 걸려면 안방까지 와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외할머니와 통화하던 엄마의 모습은 없었다
편안하게, 당당하게 자기방에서 수화기를 들었고 오래, 아주 오래 이야기를 했다
집에는 몇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안방에 있던 텔레비전이 거실로 나가면서 아빠는 거실에서 잠을 잤고 쪽방은 나의 방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침대라는 것이 처음 들어왔다
몇십 년 만에 자기만의 방이 생긴 엄마와 달리 나는 열두 살에 내 방이 생겼고 당시 좋아하던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를 사다가 벽에 도배를 했다
그리고 방문 앞에 써 붙였다. ‘출입 금지’라고.
침대가 들어온 날 엄마는 천장이 너무 가까워 잠을 못 잤다며 공중에 뜬 것처럼 이상하다고 했다
며칠을 잠을 설치고 나서야 침대에 적응을 했고 가끔은 내가 차지하기도 했다
그 후로 안방에 전축이 들어왔는데 엄마는 음악을 들으며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고 대자로 누워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없어서 좋은 건지, 자기방이 생겨서 좋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이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그러더라. 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다고. 잠이 안 와도, 잠이 와도 마음대로 불을 켤 수도, 끌 수도 없어서 답답했다고 말이다
엄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한옥집에서 불어난 세간살이와 마당과 햇볕과 함께한다
시멘트로 된 마당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이열종대로 있고 옥상에서는 이불 빨래가 파도치듯 휘날린다
얼마 전 엄마는 안마의자를 방에다 들였다
이제 엄마의 방에는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자리를 빼고는 더이상 뭔가를 들일 자리가 없다
너무 좁고 답답해 보인다니 방에서 모든게 해결 된다며 엄마는 좋아했다
그리고 다리가 아파서 많이 움직이기 힘들다고도.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그 집은 어떤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보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