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나는 그때 임신 5개월이었고,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기 위해 거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입덧으로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진한 콩나물국 냄새에 허기가 밀려 왔다
아빠는 텔레비전을 켰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화면에 이상한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이게 뭐냐며, 이게 지금 어디서 일어나는 일이냐며 방금 텔레비전을 같이 보기 시작한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화면에는 커다란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오고 있었다. 기자인지 누군지 알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전해졌고 이제 막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 우리는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모두 텔레비전 화면을 보느라 넋이 빠져 있었고 자세한 상황은 몰랐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은 분명히 알았다.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들리면서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배에는 학생들, 교사들을 비롯한 다른 탑승객들까지 몇백 명이 타고 있다고 말하는 화면 속의 남자는 분명히 떨고 있었다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눈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고 가족들도 도대체 무슨 이런 일이 있냐며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몇 시간 뒤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겼고 바다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십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팽목항을 찾아가 애도하고 가슴에 노란색 배지를 달기도 하고 자기만의 어떤 방법으로 애도를 표하며 십년이 흐른 것이다
참사가 일어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애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아직 평정을 찾지 못한 누군가가 있기에.
그해 가을에 태어난 내 아이는 열 살이 되었고 나는
나이가 사십이 넘어 중반 가까이 왔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어떤 것들은 채워지고, 어떤 것들은 비워졌는데도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도 짧은 것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고,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나 혼자만 늙어 가는 것 같아 시간을 부여잡고 싶고 늙어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실감각이 선명해지곤 한다
늙어가고 있음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부모님을 바라볼 때다. 머리에 가득한 흰머리, 목주름 그리고 자꾸만 고장이 나는 몸의 이곳저곳들.
부모님의 나이를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 진다는 것이 너무도 아프니까.
나이가 들어감에 돌잔치와 결혼식 연락은 이제 더이상 오지않고 누군가의 부고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특히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가장 많고 가끔은 배우자의 부고 소식도 온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거리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고인의 여러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죽음이란 게 성큼 다가와 언젠가는 나도 겪을 일이란게 너무도 확실하기에 부고 소식은 나의 몸을 더 떨리게 한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감일 것이다
곁에 있던 누군가의 죽음, 얼굴조차 모르는 어떤 이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기간은 얼마나 될까.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대부분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마주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애도가 끝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떠난 사람에 대한 존재의 의미,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찾는, 그 어느 때의 시간이 될지 예측도 확신도 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애도란 산자의 몫이고 죽은 자와의 관계의 정도에 따라 애도의 기간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억울하게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는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가지게 하고 그 억울함의 책임감은 산자들의 공통된 책임감 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억울한 죽음에 대해 오랜 애도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월호와 같은 일들이 잊혀서는 안되리라.
죽은 자에 대한 산자의 애도는 슬픔, 그리움, 미안함, 고마움을 지나 책임감이라는 것으로 애도의 마무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산자들의 애도는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