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소리 >

by 로리

띠띠띠. 띠리릭

“뭔 놈의 택배가 이렇게 왔노. 이게 다 뭐꼬”

남의 집 비밀번호를 거침없이 눌러 현관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나와서 이것좀 넣어라. 한두개가 아니다. 뭐시 이리 많노”

고함도 아니고 그냥 말도 아닌 잔소리 다운 잔소리의 알림음이었다

현관 문을 채 닫지도 않고 말을 하는 통에 복도에 남겨진 말과 사람이 함께 집으로 들어온다






익숙한 목소리에 억지 눈을 떠보지만 눈꺼풀은 초승달 만큼만 열린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침대에 몸을 파묻은지 3시간이 지났고 시간은 정오를 막 넘기고 있었다

꿈속의 시간 보다 현실의 시간은 몇 배 속 빠르게 흘러갔고 오전이 다 지나가 버렸다

잠깐의 오침에 오전을 다 갖다 받친 셈이다



거실로 나가봐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으며 죽은 듯 웅크렸다

때마침 깨기 싫은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있었고 이대로 끝내기엔 억울함이 있어 꿈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눈을 감고 다시 꿈을 연결해 보려 했지만 절대적인 고음의 목소리에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낮잠이건 밤잠이건 거의 매일 꿈을 꾸는데 이승에서 이루기 힘든 귀한 꿈을 꾸는 날엔 어찌나 생생한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런 종류의 꿈을 꿀 때면 미래의 사실을 본 것 마냥이룰 것만 같은, 이미 이루어져 있을 아주 비현실적인 공상이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터벅터벅, 쿵쿵쿵 발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와 자신의 육체를 소파에 던지자 육중한 무게가 전해지며 가죽 소파는 공기가 빠져 나가는 푹 소리를 내며 하중을 견뎌낸다

텅빈 거실에서 듣는 사람도 없는데 열을 올리며 엄마는 말을 시작했다

“무슨 놈의 택배가 이렇게도 많노. 저기 다 뭐꼬. 아이고 무시라. 다 누구끼고“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도 안한채 엄마는 허공에 말을 뿌리다가 어색한 자신을 발견한 듯 나의 이름을 부른다

이쯤이면 일어나 힘없는 다리를 끌며 나가야 되지만 산산조각 난 꿈이 아쉬워 말짱해진 정신으로 좀 더 비벼 보지만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엄마 왔어? 혼자 뭘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야“

“현관에 뭔 놈의 택배가 저렇게 많노. 좀 치우던지 신발 벗을 자리도 없게 만들어 놓고 이 시간까지 잠이 오나. 참말로 편한 백성이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켰고 언제나처럼 하루 종일 뉴스만 나오는 채널에 고정을 한 뒤 볼륨을 올린다

“아이고. 나라가 어찌 될라고 이러노. 큰일이다. 큰일. 니도 뉴스 좀 봐라. 쓸데없는 드라마 같은 거 보지 말고. 뉴스를 보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데 요세 젊은 사람들은 나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래갖고되겠나. 큰일이다“

엄마의 말속에는 큰일이라는 말만 몇 번이 나오는데

그 큰일이 벌써 몇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도 큰일, 비가 안 와도 큰일, 비가 많이 와도 큰일, 더워도 큰일, 추워도 큰일, 그중에 가장 큰일은 엄마의 장사가 잘 안될 때이다

엄마는 여러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느 가게의 대표이다.



엄마는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꽂은 채 아나운서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뉴스 내용을 보니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내용이었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달라지는 내용도 없어 보이는 뉴스를 엄마는 매일, 그것도 하루종일 본다. 때론 혼잣말로 한탄과 분노를 하면서.






빨간색 커버로 된 스마트 폰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벨소리가 울린다. 음량을 최대로 올려둔 엄마의 핸드폰은 민망할 정도로 소리가 크고 사나워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놀라 깰 정도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사람의 목소리는 더 크고 강해서 앞서 울린 벨 소리는 금방 묻혀버리곤 한다

“여보세요! 예예~ 사장님! 오늘은 안되고 내일 봅시다” 심지어 상대방의 목소리도 다 새어 나온다

무슨 목소리를 그렇게 크게 하냐며 퉁을 주니 잘 안들려서 그렇다고 한다.

너무 시끄럽다며 살살 말해도 잘 들린다고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통화하면 안된다고 조심하라고 걸레를 비틀어 짜는 듯한 목소리로 못을 박으며 말했다

고음의 목소리와 날카로운 벨소리, 너무도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가 뒤엉켜 짜증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멀뚱히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는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났다. 신발을 신으며 깊은 한숨을 쉬고는 현관 문을 바람과 함께 부술 듯 닫고 가버렸다

로켓 배송으로 온 택배 박스는 엄마가 왔을 때나 갔을 때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고는 보름이 넘도록 엄마는 오지 않았다






잘 안 들리는 때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어떤 관계성이 있을까.

이것은 본능이었다. 소리가 잘 안 들리면 무의식 적으로 목소리를 더 크게 내게 되는 경향, 상대방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엄마의 본능이 저렇게 강했단 말인가.







삐져서 간 엄마의 마음을 모른 채 한 것이 미안했다

거의 보름 만에 듣는 엄마의 전화 목소리는 퉁명스럽고 무거운 저음이었다. 말을하지 못한 채 울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엄마도 이렇게 낮은 저음이 되는 구나.

고음보다 저음이 더 오래 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엄마의 고음은 기분이 좋을 때, 저음은 그 반대일 때 나오는 목소리라는 것을.

나의 집에 온 엄마는 기분이 최고 였고 그 목소리도 최고의 음역대에 있었을 것이다

엄마. 뭐 해라며 말을 건네고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는 엄마의 소리에 가슴이 멍해졌다







띠띠띠. 띠리릭

“안에 있나. 점심 뭇나. 아이고메. 뭔 놈의 택배는 매일 이렇게 오노“

며칠이 지나 엄마는 순대 사들고 나타났고 때마침 오침을 즐기려던 나는 엄마의 고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쿵쿵쿵 거리며.

”엄마. 오늘 기분 좋은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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