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단체 활동이나 체육시간에는 기준으로 부터 줄을 서서 인원 파악을 했다
군대도 아닌데 아이들은 어깨를 펴고 배에 힘을주며 강하고 짧게 자신의 순서에 맞춰 숫자를 불러댔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의 아이는 마지막 번호를 외치며 덧붙힌다. 번호 끝!
왼쪽부터 시작된 번호는 인원파악이 정확하게 끝이 나고 선생님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내가 초등학교때는 한반에 오십명 가까운 학생이 열두반을 이루고 있었고 그것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리 많은 인원에도 왼쪽부터 숫자를 외쳐 나가면 딱 맞아 떨어졌다
보통은 번호순대로 줄을 섰기에 일번이 기준이 되는 셈이였고 1번은 ㄱ으로 시작하는 성씨였으며 나는 ㅎ이 들어가는 성씨 였기에 거의 매학년마다 끝번호나 끝번호 바로 앞 정도가 내 번호였다
번호 끝! 을 외쳐야 되는 일은 생각 보다 많았고 그것이 너무 싫어 학년이 바뀌면 ㅎ성씨가 있는지 파악에 들어 갔다
왜 왼쪽부터 기준이 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수없이 들었지만 엄마는 원래 그런거라 했고, 아빠는 선생님께 물어 보라고 했다. 지금의 나의 아이라면 그것도 모르냐며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하겠지만 그때야 어디 그랬던가.
그런 의문을 최초로 가지게 된 시점을 더듬어 보면 초등 3학년때였던것 같다. 지금의 내 아이와 비슷한 나이 였음에도 해결사란 없었던 시대의 장면이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면서 초등3학년의 심오한 의문은 다른 의문들에 덮혀 완전히 잊혀져 버렸다
35년쯤 지난 지금, 그때의 의문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뇌의 한곳에 깜빡 거리며 있었다. 어쩌면 다 꺼져가던 그것이 마지막 발악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 깜빡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알아 달라고.
나의 뇌에 깜빡이는 그것을 찾아낸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일본 애니를 좋아하고 주말이면 잠을 줄여가며 더 볼려고 애를 쓸 정도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진 참을성 있게 정중히 티비를 강제로 끄는 일로 마무리 한다
강력한 항의가 있지만 홀로하는 항의는 나머지 가족들에게 별 관심사가 못된다
불복할 마음이 없는 남편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일본 만화를 보기 시작했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리라 생각 했겠지만 아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노안으로 가까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팔을 뻗어가며 일본 만화를 보고 있던 찰라 아빠가 이상한걸 본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도대체 뭘 보길래 그러냐며 남편의 핸드폰을 확인했고 아이에게 일본만화라며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했다
남편이 중독에 가까운 상태였기에 무슨내용인지 궁금했고 말이 앞뒤가 안맞음을 알았다
이거 뭐가 이상하다며 물으니 오른쪽부터 읽으라며 알려 주었고 그제야 말풍선의 말들이 정상으로 보였다
그런데 오른쪽? 왜?
그렇다. 일본 만화는 오른쪽부터 읽어야 된다는 것이며 일본은 그렇다는 것이 남편이 말이였다
일본은 왜 오른쪽부터? 우리는 왼쪽인데...
그 순간! 꺼지기 직전 그것이 발악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궁금증으로 시대에 맞게 포털사이트로 이동하여 찾아 봤지만 확실한 답은 없었다
훈민정음은 오른쪽부터 세로로 쓰여져 있고 중국의 한자에 영향을 받아 오른쪽에서부터 세로로 글자를 썼고 서양문물이 들어 오면서 왼쪽부터 가로로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 대부분이였다
즉, 알파벳의 영향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왼쪽부터 기준을 세우는 것일까
그럼 일본은?
일본은 한자 사용이 많아 아직까지도 세로쓰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자를 쓰면 왜 왼쪽부터 세로로 써야하는지에 대한 또 한번의 고비를 맞으며 검색창에 커서를 두는 순간
엄마를 부르며 재워 달라는 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의문을 풀기 위해 시작된 일이 결국 더 큰 의문을 남겼고 또 언제 깜빡일지 모르는 일로 남아 버렸지만 언젠가는 다시 깜빡이며 발악할 그것을 위해 뇌의 어느 한곳을 채우지 않기로 한다
앞으로 35년 뒤에도 나는 이 에피소드를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