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교사뽕에 취해있습니다만?
잠깐 볼일을 보러 연세대학교에 왔다. 볼일 보다 더 정확히는 그놈의 회의 때문에.
밤이 되자 거리를 반짝반짝하게, 불빛으로 뒤덮은 거리를 대학가 카페에서 바라봤다. 아직 겨울이기도 하지만 가을부터 준비해 온 것들을 아직도 여전히, 2월이 된 지금도 똑같이 반복하며 일상을 보내는 중이라, 어제가 월요일이었는지 수요일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 오늘 주말이지. 어쩐지 사람이 많더라.
'선생님'이라는 수식어가 아직 어색한데, 내가 누군가보다 앞서 인생을 먼저 살았다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서도, 아무튼 선생님이라고 몇 년을 불리다 학교를 나왔다.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 초보교사인 난 '출제시즌'이 교무실을 휘집고 갈 때마다 뒷골이 당겼다.
"아.. 또 언제 다 내지."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문제를 출제한 건 난데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들었다. 내 출제 의도를 당신이 아냐고, 내 수업을 한 번이라도 교실 안으로 들어와서 직접 봤냐고, 정말이지 묻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객기를 부릴 용기는 없어 참았지만.
내 문제를 본 모든 사람들이 '적절하군! 참 잘 낸 문제야!' 하며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게 한, 나의 부족함이 깔려있을 게 분명하겠지. 어찌 됐든 문제출제는 나에게 항상 고역이었다. 똑같이 가르친 제자들을 갈라 치기 해야 하는 상대평가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처럼, 교사와 시험은 뗄 수 없는 사이기도 하니깐. (예외도 있겠지만..)
용기를 내서 학교를 나왔더니, 또 '교육' 쪽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 회의에서도 하루종일 '문제 출제'를 했다. 나로 인해 누군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때, 울컥하며 오호츠크해의 쓰나미가 나의 마음을 물들이는 것 같은 감동은 모든 선생님이 '알지 알지'할 거다. 이 울림을 친한 선생님들끼리 '교사뽕'이라 부른다. 특히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편지를 써왔을 때 뽕수치가 맥스를 찍는다. 그때의 감동과 관성을 잊지 못해, 잃지 못해, 학교일로 욕이 나오는 순간에도 아이들을 보며 참는다. 내 결인지 영혼인지 아님 그 뽕 때문에, 지금도 교육 비스무리한 일에 여전히 재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해도, 소속감을 내 발로 집어던진 채 나온 사회에서,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은 나에게 신선한 시각을 선사한다. 공교육 말고 사교육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학교에서는 알 수 없던 것들을 더 생생히 알게 되기도 하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교육에도 더 눈을 돌리게 만든 것 같다. 교육과 인생은 함께하니 배움에도 나이는 없다. 당연한 것인데, 매번 보는 것이 교실 속 10대 딸내미, 아들내미였던지라, 이를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었던 듯하다. 나도 20대가 되면서 더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이, 좁은 책상에 앉아있을 때 보다 많은 것이 사실인데.
함께 일하는 분과 저녁을 먹었다. 화이트보드에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을 만큼, '신나게' 회의를 마친 우리는 찜닭집으로 향했다. 체인점 '내가찜한닭'을 갔는데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제주도 출신, 친한 대학동기 한 명과 대학가 내찜닭에서 1인 1공기를 뚝딱하고, 막 식당에 들어온 사람마냥 '밥 볶아 주세요'를 꾀꼬리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여자 둘, 푸드파이터 시절이 생각나는 연세대 대학가의 찜닭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정말 맛있었다. 역시 짠 게 최고다.
함께 일하는 분이 교육업에 몸담구었다고 해도, 난 전공 자체가 교육이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교에 있었지 않느냐. 직업도 '교'사였다. 교교교교... 그래서 그런가 회의를 진행할 때 나의 뽕이 정체감을 진하게 드러낼 때가 있다. 봉사활동을 하거나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닌데. 지금의 난 교실 속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지금 내가 이러니 선배 교사들은 얼마나 '뽕'에 절어져 있을지 상상도 안된다. 나보다 더 진한 농도로 절어져있을 거라 예상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긍정적 영향력, 이게 내 영혼의 색깔이자 인생의 최대 가치인건가라는 순간을, 학교 밖의 일에서도 이따금씩보다는 더 높은 빈도로 발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뽕'에 스스로에게 감사할 때도, 스스로가 경멸스러울 때도 있지만. 모두가 가진 결대로 살아가고 싶듯,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며 물음표를 띄우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