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과 인격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Suite bergamasque L.75 III. Clair de lune, Debussy
지금 느낌, 분위기 - 낮이 밤으로 바뀌는 환상곡. 새벽 같다.
외향형 인간: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사교적이고 정열적인 활동가를 의미한다.
내향형 인간: 깊이 있는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을 뜻한다.
내성적: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
외성적: 속마음이나 감정 따위를 적극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것
선천적 내향, 내성 자아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후천적 외향, 외성 자아로 변하기 시작했다.
껍데기만 변하기 시작했다.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1학년때부터 반장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급 임원은 누구라도 한 번쯤 해 봤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하등 내세울 것 없다. 그냥 그랬었다는 사실일 뿐이지.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의미였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
-"아니, 어머니. 신기하네요. 유치원 캠프도 안 가려는 녀석이 반장이 되다니요~"
-"그러게요. 원장님.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은 놓여요~"
엄마의 껌딱지였고, 엄마의 품이 좋았다. 엄마가 몇 박 며칠 여행이라도 가서 집에 없으면 유치원도 가지 않았다. (*사실 1학년 초반까지도 학교에 종종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대과거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떻게 반장 선거에 나가고, 뭐라고 교탁에서 이야기했길래, 친구들이 날 뽑아줬는지 전혀 모르겠다.
반장이 되었으니, 모범을 보이라고 선생님과 어른들이 알려주셨다.
-"반장은 말이지, 학급의 얼굴이란다.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친구들이 떠들지 않게 잘 이야기해 주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그래야 해~"
-"네, 선생님!"
썩 내키지 않았지만, 반장이라는 감투를 쓴 이상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친구들에게 내키지 않는 리더십을 보였다. 그리고 친구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노는 게 재밌어서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았다.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았다. 이제 옆에 엄마가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있으니까.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구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이 반에 놀러 가도 저 반에 놀러 가도 아는 친구 한두 명씩은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졸업할 때까지 총 11번의 임원을 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늘 당당했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주위 친구들은 날 부러워했으며, 어른들은 대견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은 늘 불편했다.
그리고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갔다.
친구들 앞에서는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나를 보여주기 싫었다. 왜인지 약해 보일 것 같았다. 말도 많이 하고, 의사 표현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멋있는 것 같았다. 약해 보이는 것도 싫었다.
고등학교는 또 다른 세계였다. 나는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집 근처 학교로 배정을 받았지만, 입시 시험을 치른 고등학교는 타 지역에 사는 녀석들까지 오게 되었다.
초, 중학교 때보다 세계관이 많이 넓어졌다. 친구들도 더 많아졌다. 친구는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고, 옆 학교의 자기 친구까지 소개해줬다. 겁 없는 10대 후반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덤벼라, 세상아!'
무서울 것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을 감히 내가 하고 있었다.
비행 청소년까지 아니었고, 가출도 한 적 없다. 그렇게 큰 사고를 치고 다니지도 않았다. (*담배를 피웠으면 비행 청소년이 맞나)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 보니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했다. 선을 조금씩 넘기 시작했다.
공부도 등한시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너무 못하지도 않고, 너무 잘하지도 않고, 중간보다 조금 더 잘하는 수준으로 성적을 유지했다. 선생님께 혼난 적도 없었다. 늘 모범적으로 생활했고, 학생의 신분으로서 할 일은 어느 정도 하면서 지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반편성 고사를 보게 되었는데, 반에서 20등쯤 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반에서 3등~5등 정도는 했었는데, 전교 20등도 아니고, 반에서 20등이라니.. 기가 막혔다.
- '반편성 고사라고, 너무 대충 봤나..'
얼마 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중학교 때처럼, 하던 대로 공부를 했다. 노트 필기 한 내용을 외우고, 단과 학원도 다니면서 부족한 과목을 보충했다.
중간고사가 끝났다. 이번에는 반에서 30등을 했다.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반에서 30등을 했다. 부모님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분들이라, 그러려니 이해해 주셨다.
입시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학교다 보니, 다들 나랑 비슷한 성적대의 친구들이 모인 학교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중학교 때 정도의 노력만 했다. 오히려 2배는 더 공부를 했어야 했다. 2배나 3배쯤. 그래야 반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공부의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포기하다시피 했다. 학교에만 가면 엎드려 자기 바빴다.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께 걸렸고,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
나는 안된다며 사정했고, 대신 허벅지를 몇십 대쯤 맞았다. 그리고 점차 선생님께 혼나는 빈도가 늘었고,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께서도 더 이상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으셨다. 매를 맞아 본 적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급속도로 친구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가릴 것 없이 따라 하게 되었다. 내향, 내성적인 내가 외향적인 녀석들과 어울리기에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친구 무리를 떠날 수 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어울리며 그냥 놀았다. 집에 와서는 후회를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학교에서는 놀고, 집에 와서는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공부를 하자니 놀고 싶었고, 놀자니 공부가 걱정되고..
노는 것도 아니고 안 노는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못하는 어중간한 바보가 되어갔다.
얘랑, 쟤랑, 모두랑 친해 보이지만, 사실 친한 친구는 별로 없었다. 마음 놓고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주변만 시끌벅적하지, 내부는 움츠린 상태로 조용했다.
외향적인 척을 하고 다니니, 스스로도 내가 '내향적인 거야?', '외향적인 거야?' 변한 건지, 아닌지, 뭔지 잘 몰랐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내향이니 외향이니 마음속으로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공부를 잊은 지도 오래되었다. 이젠 후회도 안 했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놀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교과서를 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전교 450명 중 430등으로 졸업했다.
'외향이면 어떻고, 내향이면 어떻고,
내성이면 뭐가 문제고, 외성이면 뭐가 문제야'
이게 중요해?
나한테는 중요했다. 내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헷갈렸기 때문에.
불편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척해야만 할 것 같아 그렇게 했고, 가족들 앞에서는 반대로 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깊숙이 숨었다. 그리고 잘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