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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Sung Nov 18. 2022

안녕하세요?

20대 대장암 말기 환자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하얀 얼굴에 뽀글 머리, 약간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도회적이기도 한. 머리에 이름 모를 들꽃을 꽂고선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즐겁게 인사를 하는, 25살  여자 환자 미희 씨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파트 50여 명 환자 중에 유일하게 20대 인 환자, 언제나 방긋방긋 웃음 짓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릴 때도 많아 오히려 주변 환자들의 눈흘김을 받기도 하는. 아마 다른 환자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20대 초반 대학생 때 처음 대장암이라는 낯선 진단을 받고, 수차례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고, 다시 재발하여 또 몇 년을 병원에 입원 퇴원을 반복하다, 마지막 입원을 하게 되었다는 걸, 이젠 양쪽 폐 거의 전체로 전이되어 살날이 길어야 3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걸,  우리 병원 이쁜이 미희 씨가 그런 중환자란 것을 새로 입원한 환자들은 아마 잘 몰랐을 것입니다.                     

어느 날 머리에 꽂은 꽃을 빼어 내밀어 받으라는 시늉을 합니다.      

“선생님 그 꽃 이름이 뭔지 알아요?”      

“아니. 난 꽃 이름 아는 건 국화, 코스모스, 장미, 이것뿐인 걸, 미희 씬 알아요? 이 꽃 이름?”      

“아뇨. 저도 알 턱이 없죠. 흐흐흐” 미희 씨 웃음소린 어떤 때 들으면 좀 얄궂게 들립니다.      

“아니 사실 그 꽃 이름을 알까 봐 걱정이었어요. 모른다니 다행이에요. 이제부터 내가 머리 꽂고 있는 꽃 매번 이 꽃 저 꽃으로 바뀌어도 그 꽃 이름은 물망초였으면 좋겠어요”      

“네”      

“흐흐흐.” 웃다가 숨이 차서 소리가 흩어져 그런 거란 걸 알게 되면, 세상 그 어떤 울음보다 더 슬퍼지게 되는 그런 웃음. 해맑은 미소 뒤에 감추어진 고통. 어느 순간 곱던 목소린 쉬어져 쇳소리가 비슷한 소리가 종종 같이 납니다. 특히 약간 우울하거나 그럴 때는.      

“선생님 나 이제 숨이 차서 밖에 나가보질 못해요. 혹 밖에 나가면 저 뒷산에 올라가서 나 꽃 하나만 따다 줘요. 많이 말고 딱 한 송이만”       

“네 얼마든지요”                     

다음날 병원 뒷산에 올라 제일 이쁜 꽃 한 송이를 따다 전해줍니다.      

“어머 참 이쁘다. 이 꽃 이렇게 아름다운데.  선생님 나 너무 억울한 거 같지 않아? 나도 이 꽃들처럼 활짝 필 나이잖아. 한참 이쁘고 건강하고... 그런데 난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이제 조금 있으면... 이럴 줄 알았음 대학 때 그렇게 날 쫓아다니던 아이들 맘껏 사랑이나 해줄걸.... 흐흐흐... 너무 억울해... 내가 뭐 그리 잘못한 게 많다고 하느님은 날 이렇게 버리시는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하느님은 날 그냥 꺾어 버리려고 하는 거지?  그죠? 선생님 나 너무 억울하겠죠? 혹 선생님 보기에도 내가 좀 못된 거 같아요?”      

 이쯤 되면 또 미희가 흥분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슬픔을 참고 참다, 고통을 그리고 분노를 억누르고 억누르다. 이제 더 이상 누를 힘이 없어지면 흥분이 시작됩니다.  갑자기 눈빛이 흔들립니다.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내가 왜 죽어야 해? 나 너무 억울해. 나 너무 외로워. 나 너무 무서워. 어떻게 나 어떻게... 선생님 나 좀 도와줘요 제발!”      

흥분하면 호흡이 가빠지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호흡기능도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워 의식이 혼미해집니다. 그러다가 숨을 다시 천천히 쉬고 다시 흥분을 하고 소리치다 또 의식이 흐려지고, 진정제를 주사하면 그대로 숨을 안 쉬게 되니 그마저도 못하고, 그저 찢어지듯 아픈 가슴을 쥐어 잡고 지켜보기만 하는  내가 이리 아픈데 정작 저는 얼마가  괴로울까?  그러다 지쳐 그 흥분을 유지할 기운마저 없어지면, 다시 조용한 미희로 돌아옵니다.      

“선생님 그 꽃 이름 알아요? 내가 지어준 꽃 이름 물망초예요. 흐흐흐 맨 날 바뀌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물망초예요. 알았죠?”      

“네 지난번에 말해줬잖아요. 물망초...”      

“잠깐 왔다가 가는 세상... 글쎄 내가 없어지고도 누가 날 알아주나 마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 그래도 누가 나 간 다음 조금만 기억해준다면 맘이 한결 편할 것 같아요. 처음 가는 무서운 곳에 가도 저기, 저 아래 병원에 울 선생님이 나 기억해 주고 있다 하면 말이에요. 약속해 줄 수 있어요? “      

”네.”       

“선생님 그 이야기를 한 번도 못한 것 같아요. 무척 고맙다고. 아주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여태 참았던 눈물이 끝내 빰을 타고 흘러내리고 맙니다.  자기의 병을 끝내 고쳐주지 못하고, 그렇게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도와주지도 못하고,  그저 가끔씩 뒷산에 올라 꽃 한 송이를 따서 전해줄 뿐인, 환자가 불안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으면 뛰어와  이야기를 들어준 거 외엔 해준 게 없는 못난 의사를 원망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게다가 고맙다니? 얼토당토않게도, 한 단어의 말조차 이젠  숨이 차서 다 한 번에 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선 하는 말이,       

“고.. 마.. 웠.. 어.. 요...”                                      

 며칠 지나지 않아 미희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오후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 숨 쉬는 게 너무 힘들어... 이 고통 이제 그만하고 싶어...  이 숨만 쉬지 않아도 좀 편 할 것 같아!”        

그러고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혼자서 쓸쓸히 떠나버렸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아버진 간병에 지쳐 이젠 자기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혼자서 머리에 약간 시들어버린 꽃 한 송이를 꽂고 그렇게 외로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습니다.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해마다 찾아가던 병원 뒷산,  어느 날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젠 더 이상 우리가 그냥 물망초라 부르기로 한 꽃들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매년 이맘때면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고,  아직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니 혼자서 속으로 말하면 아무래도 못 들을 것 같아, 못난 글을 여기에 실어봅니다.                      

“흐흐흐”  오늘 밤엔 울음이 섞이지 않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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