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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Oct 18. 2023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이 글은 10월 말 출간 예정인 『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히니, 이르비치)의 일부입니다.




지방, 여성, 청년.
나를 수식하는 키워드다. 이 평범한 단어들과는 최근에야 부쩍 가까워졌다. 우연히 응하게 된 첫 인터뷰에서 지방에 사는 여성 청년이 가진 고민을 털어놓았을 뿐인데, 이걸 시작으로 몇 번의 인터뷰를 더 하게 됐다. 인터뷰할 때마다 지방 청년 문제를 고민하는 대표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부담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구나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의견을 말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곳저곳의 문제가 모이는 곳은 언제나 서울이었다. 청년 문제나 지방 문제조차도 서울에서 태어났거나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했거나 남성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나왔다. 서울에 살지 않고, ‘지방대’ 출신이며, 여성인 내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질지, 어디까지 전달될지 염려스러웠다. 동시에 단단한 엘리트주의와 서울 중심주의를 뚫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말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기사를 읽거나 영상을 본 이들이 보내는 ‘인터뷰 잘 봤다’는 메시지가 하나둘 쌓이고, 내가 한 말이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댓글이 가득한 걸 확인하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꽤 오랜 시간 서울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서울에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잠들지 않는
도시,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버스와 지하철,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일상적으로 누리는 서울 사람들이 부러웠다. 부모님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포항으로 이주한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와 내가 아주 어릴적 우리 가족이 잠깐이나마 서울에 살았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것이 방금 저지른 실수라도 되는 양 아쉬움이 밀려왔다. 왜 서울을 떠났느냐고 원망을 쏟아내도 내 두 발은 포항 땅을 밟고 있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이 말이 속담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격언으로 작동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말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포항의 작은 학교, 어느 반 교단에 서 있던 선생님이었다. 모든 어른이 사람은 서울로 가야 성공한다고 믿었기에 입을 모아 ‘서울로 가라’고 성화였다. 그들의 믿음처럼 서울에서 사는 것이 성공의 척도라면, 서울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한 삶일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내가 어른이 됐을 때 서울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되진 않았다. 나는 지금도 포항에서 잘만 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던 그 말은 온데간데없고 지방에 청년들이 살지 않는다며 이제는 돌아오라고 야단이다. 지방 소멸은 출생률 저하와 엮이며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문제였다. 사회가 고령화되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지방 청년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청년에게 서울이 아닌 지방에 정착하라는 아우성은 텅 빈 메아리처럼 들렸다.

지금도 저마다의 이유로 청년들은 지방을 떠나 서울로,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으로 옮겨간다. 내가 지방을 떠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답답함과 외로움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섬처럼 표시되는 경상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정치적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채식하는 친구들이 포항에 올 때면 육식 위주의 식당으로 빼곡한 거리를 헤매며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우리에게 식사의 선택지가 없다는 건 문화적 선택지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하나뿐이던 소극장이 사라졌을 때도 그랬다. 이제 포항에서 연극이라는 걸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을 독립 영화관으로 달래곤 했다. 독립 영화관은 문화 복지 차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포항시는 시민들에게 언제고 적자를 말했다. 이윤을 생각하는 순간 복지는 복지가 아니게 되는데도 말이다.

서울에서 유행하던 것들은 수년이 지나야만 포항에 도착했다. 그마저도 높고 험난한 산맥을 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언제부턴가 각종 브랜드 매장의 유무는 지방과 도시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시곗바늘이 되었다. 한때는 서울의 시간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랐고, 급기야 내가 갈 곳은 서울뿐이라 믿었다. 강한 믿음은 쉽게 깨지기 마련이었다. 지방을 떠나는 것도, 서울에서 사는 것도 더 이상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때마다 받았던 질문이 있다. 그럼에도 왜 지방에 남아있느냐는 물음. 시간이나 지면의 문제로 그동안 충분히 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그 대답을 제대로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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