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자연이 주는 평온함이다.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는 죽도라는 곳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때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지만 지금은 방파제와 도로가 생기며 육지와 연결된 곳이다.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안에는 죽도정과 죽도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예부터 죽도의 대나무는 질이좋아 조선시대에는 임금님께 진상을 했다고 한다.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절반쯤만 올라가도 죽도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좋은 날이면 보드위에 둥둥떠있는 서퍼들의 모습이 저멀리 보이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한 숨 고르게 된다. 다시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 20m남짓의 단순한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함도 꾸밈도 없는 곳이지만, 오히려 그런 담백함 덕분에 양양의 바다가 품고 있는 자연의 결이 온전히 느껴진다. 전망대까지 이어져있는 원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면 왼쪽으로는 남애해변이, 오른쪽으로는 하조대바다가 펼쳐진다. 맑은 날이면 휴휴암의 해수관음보살상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바다를 충분히 눈에 담고 난 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고즈넉한 휴식처인 죽도정이 기다리고 있다. 죽도정에 앉아 눈을 감으면 파도소리, 바람 스치는 소리, 새소리가 차례로 들려온다. 매일 듣고 보는 자연의 소리들이지만, 잠시 멈춰 귀를 기울이면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들린다. 다른 생각은 흐려지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된다.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큰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도와 바람이 오랜 시간 깎아 만든 기암괴석들이다. 자연적으로 뚫린 구멍이 신기하게 남아 있는 바위들도 있고, 마치 누군가 일부러 조각해놓은 듯한 형태의 바위들도 있다. 그 바위들 옆을 지나 걷다보년 어느 순간 바위가 끝나고, 고운 모래가 펼쳐진 죽도 해변이 나타난다.
나는 이 지점을 유독 좋아한다. 바위가 끝나고 모래가 시작되는 경계에 서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어르신들이 바위에 붙은 김을 긁어내고 미역을 따는 모습도, 바람이 실어 나르는 작은 파도도, 햇빛 아래 반짝이는 바다도 곳의 일상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고 내가 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자연스레 떠오른다. 양양의 삶은 거창하게 말할 수 없지만, 이런 소박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단단하게 버티게 해준다는 사실을 나는 이곳에서 자주 깨닫는다.
죽도는 그래서 나에게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다시 바로 세워주는 조용한 쉼표같은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