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얼마 전 기분전환을 위해 바꾼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 담당 보험설계사가 형제들 중 나를 대표로 하여 며칠째 계속 연락을 했다. 아마 내가 백수여서 전화를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러려고 벨소리를 송은이 노래로 바꾼 게 아니야! 내 사랑 송은이 노래가 싫어지기 전에 벨소리를 다시 바꿔야 했다. 어쨌든 사망보험이란 것을 정리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계약자 수익자를 변경하러 가기로 했다. 아빠에게도 같이 가야 한다고 했더니 인감을 주면서 갔다오라고 했다. 그날 집에 내려올 수 없는 여동생에게서 위임장을 받아 언니, 남동생과 함께 보험사에 방문했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서류 작성에 참 익숙하지 않다고 느꼈다. 써야 할 서류가 많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인적 사항 하나를 쓰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지금껏 사무직 허투루 했나 보다.
두 시간 반이 넘게 보험 정리를 끝내고 엄마와 자주 갔던 중국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 와중에 아빠가 먹을 짬뽕탕(소위 술국) 한 그릇을 포장했다. 내가 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뭘 주문하든 돈 내는 사람 마음이었지만 언니가 결제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농협에서 엄마 계좌 해지를 하다가 큰삼촌과 할머니를 만났다. (내 얘기에 등장하는 모든 엄마 쪽 친척은 '외'라는 표현을 붙이지 않음) 그다지 반가운 만남은 아니었기에 그저 짧은 인사만을 나누고 각자 볼일을 보았다. 엄마가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던 두 사람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아빠가 제일 큰 스트레스였겠지만 엄마는 늙어서 아빠와 잘 지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엄마의 휴대전화를 해지하고 있는데 삼촌한테서 밥 먹으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우리는 모두 지쳐 있어 더는 소모할 체력과 정신력이 없었다. 밥 얘기를 거절하고는 다시 볼일에 집중하려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 있을 때에는 엄마가 무서워 전화 한 통 못하다가 기다렸단 듯이 이제 편하게 하네. 엄마가 주변과 연락을 줄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말이지. 우리는 삼촌이 밥 먹으면서 돈 얘기할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제 정말 정리할 것들을 얼추 다 한 것 같았다.
'아빠 통장으로 엄마 보험금 들어올 거니까 알고 있어'
'내가 한 푼도 안 쓰고 그대로 놔둔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제 입으로 뱉은 말 지키는 걸 본 적이 없어. 누구 때문에 엄마가 이 고생을 하고 죽었는데! 당신은 왜 아직 살아있는 건데! 나는 아빠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