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는 뭐든지 잘 못 버리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대충의 서류 정리가 끝나자 집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뭘 그렇게나 모아두었는지 치워도 치워도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 같은 데서는 돌아가신 엄마의 물건을 치우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치우지 않는다거나 하는 장면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우리집은 달랐다. 엄마 물건을 못 버려서 슬픈 게 아니라 엄마가 버리지 않고 쟁여놓았던 물건들을 치우면서 속 시원해하는 아이러니. 엄마는 우리가 버려야겠다고 싸들고 온 것들을 집안 구석구석에 다 쌓아 놓았었다. 입지도 않는 옷을 죄다 세탁하고 옷걸이에 걸어 놔서 행거가 남어진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못 버렸을까.
"엄마가 필요하대서 사줬는데 쓰지도 않고, 쓸데없으니까 다 갖고 가."
"일단 한 번에 다 못 치우니까 천천히..."
"다 필요 없어. 다 갖고 가."
엄마의 아들이라는 자식은 엄마 물건을 쓰레기 치우듯 우리에게 떠넘겼다. 나는 엄마를 잃었는데 너는 엄마를 치우고 있어? 난 엄마의 흔적이 있는 것들은 최대한 천천히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지인들에게 '둘째 딸이 제일 걱정이다'라고 했던 건, 사실은 엄마가 없어졌을 때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어할 게 나라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강한 척 살아왔던 엄마도 사실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뒤창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라고 해봤자 여기저기 섞여있는 것들을 종류대로 모으는 정도였다. 엄마에게는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었을 그곳을 정리하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비닐 랩, 지퍼백... 부엌에서 쓸만한 것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내가 예전 회사에 다닐 때 갖다주었던 것들이 그대로 다 남아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뭘 이렇게까지 살았나 싶었다. 무조건 갖고 와라, 언젠가는 다 쓴다며 구석구석 박아놓았던 그것들을 결국 다 끄집어내어 정리해야 한다. 온 가족이 다 나눠써도 몇 년은 쓸 것 같았다. 이렇게 엄마의 것을 가져다 쓰면서 엄마 뒷담을 하더라도 엄마 얘기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는 곧 코로나 상황이 감소세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 잘 버텼는데 조금만 더 버텨주지...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밥도 물도 제대로 못 넘기던 엄마를 생각하면 이것도 이기적인 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조금 더,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번에 보험과 은행을 정리하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점은, 이미 엄마에게서 집도 받았고 보험 수익자도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돌린 남동생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린 여동생에게는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말해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엄마와 이모는 할아버지 재산에 한 푼도 욕심내지 않고 삼촌 셋에게 선산 판 돈을 나눠주었다고 했다. 나는 그때도 화가 났었는데 엄마와 이모의 뜻이 그랬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처음부터 엄마 재산에 욕심이 없었고(엄마 죽으면 같이 죽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고생한 언니에게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 명의를 남동생에게 넘긴다고 했을 때도 최소한 언니와 공동명의로 해주라는 당부를 했었고 언니는 나와 공동명의를 해주라고 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이미 남동생에게 주려고 마음 먹은 집에 딸 이름을 같이 넣어주라고 하니 화가 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남동생에게 단독으로 집을 넘겨주려니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엄마와 언니 외에는 가족이라 느끼기엔 거리감을 잔뜩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동생과 남동생에게는 항상 어떠한 위화감 같은 게 있었는데, 분명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란 남매인데도 나와 너무도 달랐다. 언젠가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어릴 때에 거절당한 기억이 너무 강한 사람은 커서도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었다. 엄마 입장에서 언니는 맏이로서 최대한 하고 싶은 걸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고 나는 언니가 실패한 것들은 도전도 할 수 없는 둘째의 포지션. 셋째와 넷째를 키울 때쯤에는 엄마도 뭔가 다 포기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하지 마라.', '우리 집에 돈이 없다.'였는데 동생들은 그런 말을 크게 듣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자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 엄마는 나에게 '엄마 죽는 꼴 보고 싶냐.' 라고 했지만 남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에는 동생 뒤를 쫓아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통과하게끔 조력했었다. 나도 평생 살면서 엄마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받은 게 없었던 내가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거절당한 경험이 없으면 저렇게나 자기 생각을 바로바로 말할 수 있구나. 그게 비록 틀린 의견일지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말을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거였어.
이제 와서 내가 아들이라는 이유로 집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