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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미스타 Oct 20. 2024

엄마의 인공위성

날 닮은 너


나는 엄마한테 퍽 괜찮은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엄마집에 가지 않았다. 힘들고 지쳐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집에 안 오냐는 엄마의 말에 요즘 도배 일이 바빠 쉬는 날이 없다고 했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제대로 된 직장 하나 없이 여기저기 떠돌면서 결혼도 하지 않는 나는 엄마가 밖에 내보이기 부끄러운 딸이었다. 직장이라도 튀어나오지 말고 잘 붙어있던가 회사 다니기 싫으면 결혼이나 하라는 엄마의 말에 '결혼할 거야! 여자랑!'이라며 엄마의 말문을 막고는 한참 동안 엄마집에 가지 않았고, 나도 괜히 그게 신경 쓰였는지 기술이라도 하나 배우면 낫겠지, 하고 도배학원에 다녔었다. 


들은 소식으로는 같이 배운 동기 중에 나만 도배 자격증을 취득했다는데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도배 현장에 취업이 잘 안되었다. 자격증이 없는 남자 동기들은 교육과정이 끝나자마자 현장에 투입되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다 같이 현장 취업이 안 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도배 선생님 입으로 그런 말을 직접 들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억지로 우겨서 도배팀에 들어갔고, 현장은 여성비하와 혐오로 가득 차 시궁창 냄새가 났다. 그래도 버티면, 익숙해지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괜찮은 자식이 되어보려고 곧 죽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서 무거운 걸 들으라면 들고 온몸에 풀 떡칠이 되어도 시키는 건 뭐든 최대한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에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파서 일하러 못 가는 나의 모습이었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여성들이 부정 출혈을 겪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연구된 바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코로나 백신의 영향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한참이나 지나 여성들의 부정 출혈에 코로나 백신이 영향을 미쳤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나는 도배 일을 다니는 동안 심한 부정 출혈을 겪었고 엄청난 노동을 요구하는 현장 일에 타인보다 훨씬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혈 주기가 아닌데도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도배를 완전히 그만둔 이유에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평생 잔잔하게 계속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결국 극심한 복통을 느끼다가 병원에 갔을 때는 '난소 출혈'이지만 그 원인도 치료법도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생리하는 여자는 다 겪는 거라고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도배 일을 하면서 툭하면 순간 휘청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부정 출혈은 생각보다 더 많이 어지럽고 더 많이 힘들었다. 이럴 거면 그냥 죽는 낫다고 말하는 나에게 '네가 게을러서 그렇다.', '참을성 없는 네 탓이다.'라는 말이 돌아올 때는 정말이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겉으로 그렇게 냉정했던 엄마는, 사실 자신과 비슷한 나를 걱정했던 것 같다. 얼굴 생김새와 성격은 물론, 내가 처음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수술 도중 피가 멎지 않아 혈액 팩을 아주 많이 썼다고 했는데 엄마도 항암을 하면서 피가 잘 멎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농담으로 '엄마랑 나는 피 나면 죽어~' 라고, 심심찮게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저 웃을 수만은 없었다. 엄마가 항암을 하다가 대상포진이 심하게 생겨 평소보다 더 길게 병원에 다녀야 했을 때도 집에 오자마자 나를 붙잡고 대상포진 주사를 맞으라고 했었다. 다른 형제들은 건강해서 괜찮은데 너는 엄마랑 비슷하게 예민하고 면역력도 약해서 대상포진이 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엄마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 아마 그 대상포진 때문이었던 것 같지만, 나는 그때도 엄마보다 내가 딱 일주일만 더 살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상포진 주사는 맞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가장 내놓기 부끄러운 딸'이자, '가장 닮은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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