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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미스타 Oct 28. 2024

엄마의 인공위성

엄나무


오랫동안 운동을 가지 않아서 손 마디마디에 만들어놨던 굳은살이 다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애지중지 소중하게 키우고 있던 굳은살이 없어지는 걸 보면서도 운동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가끔 내장이 다 뒤집어질 듯이 울렁거렸다. 화장실 변기에 앉는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오늘 밤은 극심한 두통으로 도저히 잘 수가 없어서 백신 접종 후에 먹고 남아있던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자고 일어나니 어제보다 속 울렁거림과 두통은 나아지고 변기에 앉아도 어지럽지 않았다. 나는 고작 약국에 파는 타이레놀 한 알로 진정이 되는 정도의 아픔도 견디기 힘든데 엄마는 병원에서 처방하는 마약성 타이레놀도 잘 듣지 않아 괴로워했다. 듣지 않았다기보다는 엄마 스스로 마약성 진통제를 어떻게든 적게 써보려고 하셨던 것 같다. 나는 마약을 써서라도 엄마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고 몸을 속여서라도 엄마가 덜 아프면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이잖아. 도대체 왜 안 먹는 거야. 


음식을 조금 먹었다 싶으면 바로 체하기를 반복한 며칠 동안 입맛이 싹 사라졌다. 겨우겨우 배가 고픈 감각은 돌아왔는데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고 떠오르는 건 많은데 삼킬 수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한동안 혈당 수치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을 때가 있었다. 원래도 뭘 많이 드시는 편은 아니어서 엄마가 맛있다고 하는 건 내가 안 좋아하더라도 같이 먹으러 다녔었다. 그런 엄마가 몇 번이나 얘기했었던 대구 북성로 숯불고기를 사갔지만 결국 엄마는 불고기를 쉬이 삼키지 못했다. 언니와 얘기하다가도 '이럴 줄 알았으면 당이 올라도 좋아하는 거 그냥 먹으라고 하는 게 나았을 텐데.'하고 후회하는 말만 계속 늘어놓았다. 


지인에게서 내일 만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다. 지금은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고 직접적인 거절을 하고 다시 드러누웠다. 최근의 나는 눈을 뜨면 그대로 누워서 TV를 켜고 편성표를 뒤져 하루 종일 볼만한 것들을 예약한다. 그렇게 온종일 누워서 TV를 보거나 배가 고프면 뭔가를 먹고 다시 누워서 TV를 보거나 폰으로 웹툰을 보다가 잠든다. 대충 생각해 보니 하루에 4시간을 채 못 자고, 3~4시간 정도는 일어나 밥을 먹거나 집안일하는 것에 쓰고, 나머지는 그냥 누워서 손가락만 움직였다. TV가 아니면 놀거리가 없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TV를 보다가, 엄마가 좋아했던 전원일기를 가끔 보았다. 나는 엄마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드라마도 항상 같이 보았는데 내 마지막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전원일기를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의미 없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줄줄이 보다가 정말 가끔 비는 시간에 뉴스를 보았다. 늘 예의상 뉴스를 스쳐 지나가듯 보다가 '먹는 코로나 치료제' 도입 뉴스를 들었다. 그 치료제 개발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엄마가 살 수 있었을까? 또 괜한 생각을 하다가 혼자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해외 유명 배우 알랭드롱이 안락사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도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할 때 알랭드롱처럼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상태였을까. 아무리 그래도 한 달만 더 버텨서 동생 아기 돌잔치는 보고 가지, 엄마 인생 첫 손주인데. 하지만 이미 엄마는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제 좀 털고 일어나야지 생각하던 찰나에 동네 친구들과 만날 약속이 생겼다.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십 분 거리에 있는 친구의 집에 가는 것이라 특별히 챙길 것은 없었으나,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친구 A는 필요하다고 했던 일회용 우비 다섯 개를 챙겨 들었다. 비가 왔던 백래시 규탄 시위 때 파도의 색깔인 '파랑'에 맞춰 여유 있게 사두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시위에 나갈 기력도 없고 나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원래도 푸른 계열의 색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우비를 눈앞에서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 A에게 우비를 건넸고 친구 B는 나에게 작은 종이가방 하나를 건넸다. 오래전에 친구가 엄나무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나도 궁금하니 한 줌 줬으면 좋겠다고 했던 걸 이제야 주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엄나무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늘 했던 말처럼 일단 '마른 것은 챙겨' 두면 어딘가에 쓰일 거로 생각했던 것뿐이었다. 친구 B에게 엄나무를 어디에 쓰냐 물었을 때, 닭을 삶을 때 쓴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손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가져다줄 것이었다. 엄마의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었지만, 그중에서 약재를 넣고 푹 고아주는 삼계탕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몇 안 되는 엄마의 음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엄나무를 좀 받았으면 했던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이제 엄마도 없다. 이런 상황에 그 엄나무는 나에게 아무런 쓰임도 가치도 없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그 엄나무는 엄나무가 아니라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은 나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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