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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미스타 Nov 03. 2024

엄마의 인공위성

죽은 자의 생일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엄마 생일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몰라도 나는 꼭 엄마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집을 나와서도 엄마집 근처를 떠나지 못했던 것은, 역시나 붙어 있으면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을 가졌을 때의 편안함과 더불어 아픈 엄마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달려가기 위함이었다. 엄마집에서 나와 따로 살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주변을 맴도는 인공위성이 되었다. 


엄마의 생일은 월요일이었지만 나는 일요일에 혼자 봉안당을 찾았다. 어차피 내일 동생을 데리고 또 올 테지만 내가 먼저 제대로 확인해 두고 싶었다. 다들 처음 치러보는 일이기도 했고 엄마 납골당에 올 만한 가족들은 모두 함께 납골당 위치 확인을 했으니 따로 번호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엄마 장례식부터 납골당 안치 때까지도 계속 격리 중이던 남동생이 나중에 혼자 그곳에 찾아갔을 때 엄마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왜 그걸 못 찾냐며 역정을 냈던 내가 있었다. 화가 나면서도 혹시나 그 며칠 사이에 내가 보았던 풍경과 뭔가 변동이 생겨 남동생이 못 찾은 건 아닐까, 한창 공사 중이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일 같이 왔을 때 같이 헤매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사전답사를 한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때의 그 풍경 그대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고 나는 금방 엄마를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절차를 정신없이 진행하다 보니 엄마 칸에는 언니가 넣어둔 비싼 비타민 하나만 덩그러니 들어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꾸며놓은 것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달아놓은 장식품들이 옹색하거나 지저분하기만 하고 예뻐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 딸린 꽃 매점에 가서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우리 엄마는 가뜩이나 답답한 걸 싫어하는데 꽃까지 달아서 시야가 좁아지는 건 너무 싫겠지? 평소에 조화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니 그냥 깔끔하게 가자. 쓸데없이 보태지 말자. 


엄마 없는 엄마집에는 온기가 없었다. 왔냐고 말을 거는 아빠를 지나쳐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남동생을 마주했다. 


''내일 납골당 가야지?''

''왜? 49재 아니잖아.''

''오늘 언니 생일이고 내일 엄마 생일이잖아.''


엄마는 평생 가족들 생일만 챙겼지, 본인의 생일은 챙겨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가족 중 누가 생일에 큰 의미를 두는 것도 아니어서 생일을 챙기는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래도 나는 한여름 땡볕에 고생하며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고, 여행을 좋아하지만 혼자 밖에 나가기 두려워하는 엄마를 위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1년에 한두 번 여행 계획을 짜기도 했었다. 


''나 배고프다. 피자 사 올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지갑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 지갑 놔두고 왔는갑다. 카드 좀.'' 

''현금 써. 그냥 내 지갑 들고 가.''


전화로 미리 피자 주문을 하고는 남동생 지갑을 들고 엄마와 자주 가던 카페 겸 피자집에 갔다. 시골이라 외식이나 배달 음식 시킬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카페를 하시는 분이 피자를 같이 파는 게 꽤나 맛있었고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도 이 집 피자는 한 조각씩 먹고는 했다. 


''어우, 오랜만이에요~ 오는 길이야? 가는 길이야?''

''이제 오는 거예요. 내일 엄마 생일이라서 엄마 있는데 남동생 데리고 갈라고요. 혼자 가서 못 찾았다고 그러더라고요.''

''나도 친구 납골당 가봤는데 너무 많아서 찾기 힘들더라. 잘 갔다 와요.''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에 또 피자를 사러 갔다가 엄마의 이야기를 전했었다. 엄마는 이 카페 사장님이 자신에게 잘해준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고 사람이 좋다며 내가 없어도 산책하다 친구와 한 번씩 들른다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처럼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동네 이름을 딴 스페셜 피자를 포장해서 집으로 왔다. 


동생과 피자를 나눠 먹다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요즘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얼마 있지도 않은 근육도 전부 도망간 것 같이 기력이 없더니 간만에 좀 움직였다고 벌써 모든 힘을 다 쓴 것 같았다. 내일 다시 운전해서 돌아가려면 오늘은 체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거실에 다리를 꼬고 눕듯이 앉아서 태평하게 TV를 보고있는 애비가 꼴도 보기 싫었다. 엄마가 있을 때는 잘 나오지도 않더니 엄마가 없자마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속이 뒤집어졌다. 


뉴스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증가로 화장장과 안치실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엄마를 화장할 때도 '줄 서 있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나마 엄마는 몇 시간만 기다려 화장터에 갔지만, 지금 하루를 넘기고 이틀을 넘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방 안에 들어가 봉안당에 넣어줄 물건을 다시 하나씩 챙겨보았다. 안경이 없어서 불편할 텐데, 엄마 애착 머리빗도 넣어줘야지. 엄마가 좋아했다는 제주 약천사 불상 사진도, 군산 여행 갔다가 엄마가 갖고 싶다고 해서 사줬던 연꽃 모양 장식품도, TV 앞에 늘 모셔놨던 부엉이 장식품도, 모두 넣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동생은 그것마저도 귀찮은지, 49재 때 또 갈 건데 뭐 하러 이번에 넣냐고 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드나들 사람은 나일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우리는 공원 사무실에 가서 개폐가 필요하단 얘기를 하고 슬슬 걸어 엄마가 있는 건물로 갔다. 사무실에서 말해준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공원 관리자는 압착기와 전동드라이버를 이용해 유리문을 떼어냈다. 가지고 간 물건들을 하나하나 넣다 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좁고 가져간 물건의 크기가 컸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우선순위를 생각하다가 결국 엄마의 애착 머리빗은 빼게 되었지만, 안경과 불상 사진, 연꽃, 부엉이를 잘 넣고 다시 유리문을 닫았다. 


''엄마 2인용 큰 칸에 모실 걸 그랬다. 한 칸이라 답답할 텐데. 뭐 많이 넣지도 못하네''

''뭐, 됐어.'' 

''근데 또 두 칸짜리에 모셨으면 아빠 죽고 같이 모시라고 할 거 같아서 안 하길 잘했나 싶기도 하고.''

''영감 죽으면 부산(*아빠 동생)한테 들고 가라고 할 거다.''

''그래. 엄마랑 같이 어쩌고 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다.''


술을 잔뜩 처마시고 들어온 애비가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지금 밥이 입에 들어가냐?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아나? 술 먹고 그렇게 사고를 치고 엄마를 힘들게 해놓고 또 술독에 빠져 살지?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낫지만, 밖으로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백번을 말해도 천번을 말해도 바뀌지 않았다. 애비라는 자는 예전부터 그랬다. 우리가 집에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오버해서 이상한 쪽으로 관심을 끌고 우리가 하지 말라고 타박을 주면 재미있는 듯이 좋아했다. 그걸 보는 엄마는 속이 뒤집혀 또 뒤로 넘어갔다. 엄마가 없는 지금 이 집에서 당신의 위치는 엄마집에 살고 있는 사람, 그뿐이다. 


우리 남매는 사실 사이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가족치고는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평소와 다르게 대화가 많아졌다. 같은 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겠지. 


집에 돌아와 지갑을 찾아보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을 내리며 지갑을 꺼내 찍고 집에 돌아와 다음날 차를 가지고 엄마집에 오기까지 지갑을 흘릴 곳이 없는데 엄마집 내집, 차를 다 뒤져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지하철과 봉안당에 분실물 전화를 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나 신분증은 잃어버렸다 치더라도 일부러 갖고 있겠다며 챙겨온 엄마 병원카드와 우리 여자들끼리 찍은 가족 사진이 들어있는데 도저히 그 찰나에 잃어버린 기억이 없었다. 영화 '니나 내나'에서 주인공 미정이 엄마 유골함을 분실했을 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혼자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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