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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미스타 Nov 18. 2024

엄마의 인공위성

49재


이모는 49재 당일 아침에 온다고 했고 중간삼촌은 당일에 올 수 없다며 전날 미리 다녀가기로 했다. 큰삼촌은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전화 한 통 없었고 몸이 불편한 막내삼촌은 내가 태워서라도 엄마 있는 곳에 같이 가고 싶었다. 지난번 엄마집에 들렀을 때 남동생이 '막내삼촌은 휠체어가 있으니 누나 차에 태우지 말고 내 차에 태워야 한다'고 했었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막내삼촌을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사실 엄마한테 제일 가고 싶은 사람은 큰누나를 엄마처럼 따랐던 막내삼촌일 텐데, 빈소에도 못 오고 납골당에도 같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 나중에라도 내가 따로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49재 상에 올릴 장을 보러 가다가 엄마와 자주 가던 곱창집이 보였다. 둘이서 5인분은 기본이었다. 


''엄마 저기 좋아했는데...''

''엄마 저기 안 좋아했어.''


내가 저 가게에서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담너머 처음 보는 아주머니와 즐겁게 꽃 화분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의 모습이 선한데, 동생과 나는 각자의 기억이 너무도 달랐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며 웃었던 시간을 떠올렸고 동생은 엄마가 아파서 모든게 힘겨웠던 시절을 생각했다. 


언니와 남동생이 앞장서 시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 엄마처럼 보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고추튀김과 오징어튀김을 사려고 보니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떡볶이 할머니가 요즘 아파서 잘 안 나오시니까 나오셨다 하면 금방 줄이 꽉 밀려버리는 것이었다. 시장을 다시 한 바퀴 돌아 한가해진 줄에 서서 잘 튀겨지는 고추튀김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도 힘들어 보이셨다. 바로 건너에 엄마가 좋아했던 풀빵도 한 봉지 사고 그 건너에서 과일도 샀다. 잡채 거리와 나물거리도 샀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자주 가던 식자재마트에서 소소한 것들을 사고 적립 번호를 불렀다. 


''이름은요?''

''오일화요.''


아, 여기 오면 엄마 이름을 부를 일이 있겠구나. 


집에 돌아와 장 본 것을 정리하고 있을 때 내일 올 수 없어 미리 들르러 왔다며 중간삼촌이 왔다. 3월 중순쯤 코로나 양성이었다가 몇 주가 지난 지금은 음성인데도 목소리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맛은 느낄 수 있나?''

''아니. 못 느낀다. 근데 느그 아부지는?''

''몰라. 나갔어.''

''몰라 카지 말고~ 그래도 아부진데. 전화 함 해봐라.''


삼촌이 몇 번 전화를 걸어도 아빠는 받지 않았다. 


''내일 못와서 함 보고 갈라 캤디만...''

''거서 또 술 마신다고 전화도 안 보고 있을걸.''

''참내... 누나는 그거 살고 갈라고 그래 아등바등 살았나 싶다.''


아빠를 한참이나 기다리던 삼촌이 집에 갈 때까지 아빠는 들어오지 않았고 나와 언니는 바람도 쐴 겸 삼촌을 배웅했다. 


''노래방 갈까?''

''가자.'' 


코로나 이후로 함께 노래방에 가지 못했었는데 자주 가던 노래방이 새 단장을 한 모양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뭘 불러야 할지 헤매다가 적당히 우리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90년대 HOT 100 같은 느낌의 곡들을 부르고 있는데 남동생에게 아빠가 왔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에게 미리 차려둔 것들을 내주라고 하고는 서비스까지 한 시간 반을 딱 채우고 집에 돌아와 상차림을 시작했다. 중간삼촌이 갖다주고 간 햅쌀 푸대를 열어 밥 한 솥을 새로 하고 남은 쌀은 나와 여동생이 나누어 챙겨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빠와 남동생 먹게 두고 가려 했었는데 집 안을 정리하다 보니 여기저기 쌀이 차곡차곡 많이도 저장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정작 본인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으면서 남편과 아들은 굶지 말라고 참 열심히도 쟁여두셨다. 


밤 11시쯤부터는 대문도 열어두고 향도 피웠다. 엄마가 좋아했던 멍게, 주꾸미볶음, 닭발, 오돌뼈, 꼬막무침, 통문어, 고추튀김, 오징어튀김, 남동생이 그릴에 직접 구운 훈제 고기, 풀빵과 겹겹이 빵 몇 가지, 잡채와 새로 한 흰밥까지 천천히 올렸다. 누가 봐도 이상한 제사상이겠지만 허례허식에 둘러싸여 병을 키워간 엄마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혈당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거의 못 드셨던 날을 생각하면 더 많이 올려주고 싶었지만, 나는 돈 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냥 잠자코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좋아하는 무화과나무를 보러 마당에 나갔다가 문득 대문 밖에 있던 아빠 오토바이가 마당 안으로 들어와 있는 걸 봤다. 사고의 원흉, 오토바이. 이제 엄마가 없다고 자기 마음대로 엄마집에 그 원흉을 들여놓았다. 우리가 상차림을 하는 걸 보고도 말 한마디 없이 아무렇지 않게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꼴이 보기 싫었다. 


우리는 절을 하지 않았다. 그냥 향을 피운 상 앞에서 자매 셋이 두런두런 수다를 떨었다.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남동생은 방 안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으며 게임을 했다. 방 안에서 아이를 재우던 동생 배우자가 나와 절을 하고 싶다며 큰절을 두 번 올렸다. 문을 다 열어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역시 밤에는 아직 쌀쌀했다. 두 시간 정도 열어두었던 문을 모두 닫고 향에 불도 더 붙이지 않았다. 음식은 상 위에 그대로 두고 꺼진 향냄새를 맡으며 잠깐 눈을 붙였다. 


새벽 내내 왔다 갔다하는 아빠 때문에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비몽사몽인 나 대신 언니가 먼저 눈을 떠 목욕탕에 갈 준비를 했다. 새벽부터 목욕탕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나는 그날따라 왠지 안에 오래 있기 힘들어 빨리 나왔고 젖은 머리를 말렸다. 


''**댁 얘기 들었는가? 그렇게 아픈데 기를 쓰고 일하러 다닌다던데.''

''그러게. 아픈 사람이...''


그래. 아픈 사람이 기를 쓰고 일해봤자 죽는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칼국수를 끓여 엄마상에 올리고 우리도 아침을 먹었다. 엄마랑 서문시장에 칼제비 먹으러 잘 갔었는데... 엄마가 뒤늦게 입맛을 붙였던 마카롱도 올렸다. 상을 차리던 언니는 수저통을 열어 개수를 확인하며 연신 갸우뚱했다. 


''집에 젓가락이 왜 이렇게 없어?'' 

''엄마가 예전에 그랬는데, 아빠가 자꾸 집에 있는 수저를 갖고 나간대. 그래서 지금 몇 개 없다고.''

''아니, 뭘 얼마나 갖고 나가길래 지금 쓴 거 안 쓴 거 다 합쳐도 말이 안 되잖아.''

''지금 젓가락은 대여섯 쌍이 단가보다. 아니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새벽 내내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뜨끈한 목욕탕에서 몸을 지지고 밥까지 먹었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이모가 9시나 10시쯤 온댔으니까 그때까지 좀 잘란다.''


나와 여동생은 나란히 누워 기절한 듯이 잤고 얼마나 잤을까, 이모가 집으로 들어왔다. 


''느그 아부지는?''

''몰라. 나갔어.''

''카지 말고~''

''우리가 어제부터 상 차리고 향 피우고 해도 뭔지 모르는 표정으로 지나다니더라.''

''그캄 놔둬라.''


다들 아무리 미워도 아빠라고 봉안당에 인사는 같이 가려고 했었다. 아침에 눈에 보이기만 했어도 눈 질끈 감고 데려갔을 텐데 어제부터 계속된 모르쇠까지 더해져서 우리는 마음이 또 한 번 돌아섰다. 


''내가 어디 가서 언니 잘 갔나 물어봤는데, 편하게 잘 갔다고 하드라. 걱정마라.''

''다행이다...''


이모의 말에 안심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못한 건 여전했다. 남동생이 운전해서 나와 언니가 한 차, 여동생 가족이 한 차, 이모가 한 차로 각각 이동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바다 풍경과 꽃나무, 연꽃 사진들을 담은 사진첩을 넣어주고 한참을 그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모부가 느그 맛있는 거 사주라 카드라. 밥 맛있는 데 있나?''

''엄마랑 잘 가던 버섯전골집 있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언니는 아기 의자부터 챙겼다. 그나마 엄마집에 와서 뒤집어지는 속을 가라앉혀 주는 게 다음 주면 태어난지 딱 1년 되는 조카였다. 처음에는 손만 대도 울더니 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제법 이모랑 눈도 마주쳐주고 잘 놀아준다. 애 밥 먹이느라 내 동생이 밥을 못 먹는 건 안타깝지만 이 조그마한 생명체한테 온 가족이 매달려 있는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 바라고 좋아했던 손주. 밥을 먹고 나니 또다시 밀린 졸음이 따라왔다. 


곧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동생 부부가 낮잠을 잠깐 자는 동안 나는 작은 생명체와 물통을 굴리며 놀았다. 나갔다 들어온 아빠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자기에게 오기를 유도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 동생네에게 이모가 바리바리 싸 온 보따리를 열어 과일이며 KF94 마스크를 챙겨주었다. 나는 카시트에 앉은 조카를 보며 뭐가 그리 아쉬운지 연신 손을 흔들었다. 순풍아,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이뻐했는지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남는다면 다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여동생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이제는 진짜 자고 싶었다. 그렇게 TV를 켜놓고 언제 잠든 줄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뜨니 배가 고파 엄마상에 올렸던 것들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항상 비싸다며 아껴먹는 엄마에게 걱정 말고 다 먹으라며 나는 한 번도 먹지 않았던 꼬막무침을 먹었다. 엄마 덕분에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마카롱도 실컷 먹었다. 


아빠는 다 늦은 시간에 덮어놓은 상보를 걷어내고 우리가 꺼내놓은 음식과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밖에서 술을 그렇게 마시고 들어왔으니, 허기가 지기도 하겠지. 그리고 여전히 그 음식이 엄마 상에 올라갔던 음식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입에 우걱우걱 넣기 바쁜 그 모습이 또 참 꼴 보기 싫었다. 


나는 낮잠을 자서인지 아빠 코 고는 소리 때문인지 밤에는 잠들기가 힘들었다. 창고 불을 켜고 흩어져있는 물건들을 종류별로 모으고 뭔지 알 수 없는 담금주는 다 쏟아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는 전에 왔을 때 버리려고 모아둔 옷가지들을 챙겨 근처 재활용 자원센터에 갖다주고 6천 원을 받았다. 엄마처럼 뭐든 잘 못 버리는 나도 이제 물건을 쟁여놓거나 극도로 아끼던 성향을 좀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쟁여놓고 싸안고 있어 봐야 죽으면 그만인데. 엄마가 애지중지 모아놨던 빈 생수병도 다 꺼내어 라벨을 떼고 밟아 큰 한 봉지를 만들었다. 어제 못다 꺼낸 라벨 없는 담금주도 전부 꺼내 쏟아냈더니 온 집안에 술 냄새가 진동해서 열 수 있는 문은 다 열었다. 술은 입에도 안 대는 분이 왜 그렇게 담금주를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그 담금주는 아빠가 몰래몰래 꺼내먹기 좋은 간식이 되었다. 


하루 종일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벌써 해가 졌다. 언니는 피곤한지 곯아떨어지고 나는 언니를 깨우지 않으려고 폰 충전기만 들고나와 방문을 닫았다. 또 어디 갔다 왔는지 어둑할 때 들어온 아빠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 의자에 앉아 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몇 분 동안이나 연속으로 버튼을 띡띡띡 누르는 소리가 거슬렸다. 평소에는 잘 갖고 다니지도 않더니 얼마 전부터 누군가와 꽤 잦은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의 원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우리와 철천지원수마냥 서로 안 보고 지낸 지가 수십 년이 지났고 이제 엄마가 없으니, 자신의 원가족과 편하게 연락하겠다는 거겠지. 


어린 우리 머릿속에 아빠의 엄마라는 사람은 아들 못 낳는다고 엄마를 구박하고 밥도 못 먹게 한 사람, 아빠의 형제라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식칼을 들고 엄마를 죽이겠다며 난리를 쳐놓고는 나에게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삼촌이야~'라고 한 사람이었다. 우리한테 삼촌은 아빠를 대신해 우리집을 들여다봐 준 엄마의 동생들뿐인데 어디서 삼촌 소리를 입에 올리는지 어이가 없었다. 엄마가 아프고부터 몰래 연락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태도가 바뀐 것이 짜증 났다. 삼십 년을 넘게 우리를 방치하고 살아놓고 이제 와서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것도 속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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