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다. Ep. 2
공무원.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는 공무원을 준비할 때는 공무원이 공적인 일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무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다.
사실 이게 가능하려면 공무원 시험도 심성이 착한지 여부로 합격자를 선별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뭐 어쨌든 나의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는 그랬었다는 건데, 그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래'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상당히 역설적인 게,
공무원에 대한 나의 환상은 공무원을 시작하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져버렸으니까.
임용장 수여식을 마치고 어리둥절한 신규 공무원 동기들을 뒤로 한채, 나의 첫 사수가 될 제비 주사님과 함께 부서에 인사를 하러 갔다.
참고로 지금 연재 중인 '나는 공무원이다'는 내가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등장인물도 모두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등장인물 모두 내가 같이 지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이미지를 토대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으니 그냥 그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첫 사수인 제비 주사님도 제비로 캐릭터를 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에피소드가 진행되면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내 공직생활 첫 부서는 건설과였다. 토목직 공무원이라면 꼭 거쳐간다는 건설과는 도로, 하천, 하수 등 토목의 기본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정통 토목 부서다.
모든 부서에 배치될 수 있는 행정직 공무원도 당연히 건설과로 발령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건설업 등록 및 관리, 국공유재산 관리, 토지보상처럼 다소 어려운 업무와 도로점용허가 및 노상적치물 단속과 같은 지저분한 업무를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행정직 공무원이라면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상책.
물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업무보다는 직장상사를 누구를 만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막상 일을 해보면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 과장님은 첫인상이 너무 좋아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과회식은 대부분 일정 조율 없이 통보한다. 기존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의견도 일일이 듣지 않는 판국에 신규 공무원은 두 말할 것도 없지. 그렇지만 아직 정식 공무원도 아닌데 과회식이라니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뭐 직원들과 미리 친해질 기회라니까 좋게 생각했다.
시계를 보니 5시다. 회식까지 1시간이 남아서 전체적인 우리 과 분위기가 어떤지 파악해봤다.
역시 사람은 첫인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나는 공무원 임용을 앞두고 '미생' 같은 직장생활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많이 봤었다. 젊은 나이의 첫 사회생활인데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나. 직장생활 중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그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해볼 정도로 노력했다.
드라마에서는 정말 다양한 꼰대 상사들을 볼 수 있었다. 책임을 안 지려는 결정장애부터 사생활까지 참견하는 오지라퍼까지. 당신이 가장 만나기 싫은 상사는 어떤 유형인가? 내가 가장 만나기 싫었던 유형은 바로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호통치는 직장상사였다.
혼나는 건 두렵지 않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혼나고 배우면서 하나씩 개선해나갈 자신 있으니까.
하지만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세워놓고 혼내는 건 참기 힘들다. 사회생활의 축소판이라는 군대에서도 잘못해서 혼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다들 보는 앞에 세워놓고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게 싫었던 것처럼.
그런데 우리 과장님은 딱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직장상사였다.
본인은 같이 잘해보자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직원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왜 모를까?
물론 과장님도 젊을 때 똑같이 깨지면서 저 자리까지 갔겠지만, 불필요한 '라떼'만 고집하면 참지 않는 세대인 MZ세대와의 화합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싫은 건 싫은 거고,
지금 공직에 첫 발을 내딛는 입장에서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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