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다. Ep. 3
그렇게 나는 정식 발령을 받기도 전에,
공무원이 아닌 신분으로 공무원 회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아직 안좋은 일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내 나이 27세. 살면서 처음한 회식이 바로 오늘 일 줄 누가 알았으리.
Ep. 2에서 계속 징징댔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징징거리고 싶다.
"아니, 임용장 수여식이라고해서 갔더니, 이렇게 무방비로 회식까지 데려가기 있냐고!!"
공무원 과회식은 5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회식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있다. 그리고 그 사회자는 보통 과의 '주무계장'이다. 그러면 '주무계장'은 누구냐. 이걸 설명하려면 공무원 조직체계부터 설명해야 한다.
공무원 조직에는 다양한 부서가 있고 각 부서들 사이에는 엄연히 서열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부서를 우리는 '주무과'라 부르는데, 이걸 부서의 하위 조직단위인 계(또는 팀)로 보면 부서 안에 가장 서열이 높은 계를 '주무계', 그 계장은 '주무계장'이 되는 것이다.
다시 공무원 과회식 특징으로 돌아와서, 주무계장의 사회에 따라 과회식이 시작되면 과장님 건배사를 시작으로 계속 건배사가 이어진다. 정말 긴 경우에는 40분~1시간 동안 건배사를 하게 되는데, 이건 공무원 10년차가 되어도 아직 적응이 안되는 것은 물론, 없어져야 할 문화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렇게 건배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 건배사를 할 때마다 술은 술대로 계속 마셔야 하고, 그 동안 음식은 손도 대지 못하는데 마치 과회식을 빙자한 괴롭힘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나한테 갑자기 건배사를 시킬 수 있다. 이걸 당해본 사람은 두 번 다시 회식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정말.
아마 이 점이 요즘 MZ세대 공무원들이 회식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아무튼 불안한 예감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내 인생 첫 회식에 첫 건배사를 하게 되었다.
특히, 앞 사람이 너무 잘해버리니까 나도 잘해야된다는 압박감이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심리라는 게 처음 보는 사람이 더 궁금하고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가 건배사를 해야하는 그 순간의 정적은 더 고요하고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대참사가 이어졌다.
"저는!!! 건설과에 꼭 필요한 좆재가 되고 싶습셉습!!!!"
욕인지 건배사인지 알 수 없는
내 꼬인 혀에서 나온 아우성과 함께
내 공직생활 첫 단추도 그렇게 꼬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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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 갑자기 건배사를 시킬 때 위기를 넘기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