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경찰 생활을 돌아보며

잘 포장된 길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향해

by 오늘의 민철


육아휴직 첫째날.

새벽 세시 반에 깬 아이를 재워 눕히고 집근처 스터디카페에 왔다.

10년간 정신 없이 다니던 직장에서 한발짝 물러나니


왜 이 직장에 들어왔는지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졌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돌아보고 싶어졌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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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3살의 어리고 어린 나이에 경찰 공무원이라는 길을 택한 걸까.

1. 하고 싶은 게 없음

20대 초반의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없었을까? 하고 싶은 건 사실 마음 깊은 곳에 있었지만 부모님을 포함한 사회의 수많은 압박이 ‘그런건 해서는 안돼’라고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돈을 벌지 못할까봐, 사회적으로 낙오될 것 같은 불안감이 ‘하고 싶은 게 없는 나’를 만들고 있지는 않았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들은 늘 있었다. 친구들과 당구치며 실컷 놀고 싶었고, 밤새 게임도 하고 싶었다.(충분히 한 것 같긴하지만)


왜 우리는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일’로 쳐주지 않는걸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는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내 욕구들에 대해서 충분히 존중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좀 더 과감하게 비생산적인 일에 도전해도 됐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시기에 효율성을 찾아 직업을 탐색했다.

2. 잘하는 게 없음

운동 신경이 꽤 있는 편에 속했던 것 같다. 중학교때 꿈은 ‘선생님’이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 현실의 벽을 깨닫고 선생님의 꿈을 포기할때쯤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체육선생님이 체대를 준비하며 ‘체육교육학과’를 가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해 주셨다. 마음으로는 사회교육학과, 역사교육학과 같은 곳을 가보고 싶었지만 그곳을 가기에는 내 성적이 뒷받쳐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쉬어보이는 체육계의 길을 택했다.

그렇게 체대 준비를 해서 한국체대 사회체육과와 관동대 체육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정말로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면 관동대에 가는게 맞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지방으로 가기는 싫은 마음이 들었다. 한체대에 가겠다고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던 담임선생님 얼굴이 생각난다.

그렇게 한체대에 입학하니 소위 체육괴물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운동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학생이었고, 이런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어쩐지 죄를 짓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내가 있어서는 안될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진로는 자연스레 체육계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체육대학의 학생으로서 나는 잘하는 게 없어보였지만, 과연 나는 잘하는 게 없었을까? 스스로를 조금 더 믿고 시야를 키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잘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활용해볼 수 있는 시도를 해볼수는 없었을까? 체육대학교라고 해서 꼭 운동만 배울 수 있었던 걸까? 다른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아쉬움이 남는 대학 생활이다.

3. 경찰관

스스로를 좋아하는 것 없는 사람, 잘하는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나를 ‘가치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까지는 별로 경찰이 되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 속에서 길을 잃고 ‘뭐 먹고 살지’를 고민하며 진로상담을 받는데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뭔가 그럴듯해보이고, 이정도 직업이면 어디가서 남들에게(특히 내 앞날을 무척이나 걱정하던 부모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타인(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돈을 번다’는 좋은 포장지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평생 짤릴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점에 강하게 끌렸다.

솔직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박근혜 정부에서 경찰 증원을 한다고 공약 후 채용인원을 대폭 늘리던 시점이었다. 시험과목과 합격 컷트라인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기 합격 전략을 세워 3개월만에 합격했다.

4. 10년 간의 직장 생활

스스로를 좋아하는 것 없는 사람, 잘하는 것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내렸던 나는 직장에서도 스스로를 그렇게 대했다. 물론 조직 사회에서 제일 나이 어린 막내라서 그런것도 있겠지만(눈치 보지 않고, 뛰어다니지 않는 막내들도 참 많더라. 사람들은 욕했지만 나는 그런 막내들이 내심 부러웠다.) 참 부지런하게 열심히 뛰어다녔다.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하고, 약속 시간도 잘 지키는 성실한 생활을 했다. 많은 상사, 선배들의 비위를 잘 맞췄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높게 평가해줬다. 그래서 부서이동의 기회도 많이 얻었다.

기동대에 있을 때는 팀장님의 권유로 행정팀에 갔고,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는 같은 팀 선배의 추천으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들어갔다.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는 당시 경찰서장님이 나를 좋게봤는지 도경찰청 생활안전과에 데리고 와주셨다. 도경찰청 생활안전과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이 근무하던 반장님의 추천으로 도경찰청 홍보실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직 안에서의 ‘일’이 좋았던 적은 최근에 근무했던 홍보실이 처음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늘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좋았다. 그 사람들도 나를 대체로 인정해주고 좋아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어딜 가서도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고, 그것을 다르게 표현해보면 ‘사회성이 좋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과 잘 지냈던 것은 아니다. 정말 싫었던 사람들도 있었고,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싫은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와중에 항상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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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없었지만(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늘 어딘가로 향했다. 무언가 더 나아지는 것을 추구했다. 경찰이라는 조직을 택하고 일직선의 길로만 달려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늘 구불구불한 길을 선택했다. 새로운 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갈망했고 그 욕구에 충실히 따랐다.

사실 이 조직 안에서 완벽한 충족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하향식 업무는 나에게 정말 맞지 않는다는 것을 10년만에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생각해보고 할 수 있는 자율성이 필요한 사람이다. 홍보실이 그래서 좋았다.

사람으로봐도 정말 좋은 상사, 동료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이 조직의 시스템 안에 갇혀 괴로워하는 모습도 함께 지켜봤다. 반면에 내가 좋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승진을 하고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을 뒤에서 욕하고 괴롭히는 모습도 똑똑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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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0년의 시간을 통해 확실히 배운 한가지가 있다면,

정체되어 고이는 것보다 새로운 길로 나아갔을 때 항상 좋은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아무 생각없이 경찰 조직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어린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어디가 되었든 나아가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비록 잘 포장된 길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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