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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Jan 14. 2024

두 아들이 아버지에게 준 상패

삶의 각도



연약하고 연약하다. 변하고 변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함이 없다.

연약하지 않다.




작년 11월 초 큰아들이 한국에 잠깐 왔었다.

남편의 60번째 생일, 회갑을 위해서였다.

의미있는 회갑 축하를 위해 두 아들이 머리를 더 맞댄 것이 상패였다.

아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생일은 지났지만 새해 힘내라는 의미로

1월 1일 전달식이 있었다.

둘째는 음식을 준비했고 첫째는 폴란드에서 영상편지로 다시 인사를 했다.




귀하는 30년간 아버지를 하시며

두 아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셨고

가족을 이끌기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그 어떤 아버지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감히 바꿀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주시며

가장으로서 사람으로서의 본보기가 되셨기에

이 상패를 드립니다




'귀하는 30년간 아버지를 하시며~'




남편의 인생은 오로지 '-하다'였다.

'하다'가 삶의 태도였고 인생이 행동이었다.

그리고 '-하지 않았다'






오지의 작은 마을, 남편은 지지리도 가난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차비를 빌려야 할 만큼 심각하게 불편했다. 두부를 만들어 팔던 어머니는 매일 두부 반찬을 싸 주었다. 지금도 두부라면 도리질한다.

그러나 호소할 데가 없었다. 그들의 몫이었다.

장남인 그는 무능하고 미숙한 아버지에게 반발했다.




1945년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다.

1949년 8월, 24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소리는 무고한 사람들의 숨을 텅 비운 후에야 멈췄다.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되었다. 시신을 발견한 날이 제삿날이다. 그 날은 동네 반 이상이 제삿날이다. 추석 전전날이다.

마을 전체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무남독녀 시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를 잃었다. 7살 때였다.

흰말을 타며 관리했던 논밭은 무주공산이 되었다. 친척들에게 야욕의 먹잇감이 되었다. 형극의 세월이었다.

홧병을 앓던 어머니마저 14세 때 돌아가셨다.

어린 시아버지와 시아버지의 할머니는 재산을 지킬 수 없었다. 혈혈단신 세상에 던져졌다.

참혹한 상처는 회복되기 어려웠고 어떤 정서는 어른의 품격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흔치 않은 집안환경, 거부하고 거부하지 않았다. 감당했다. 희생하는 어머니와 헌신하는 누나가 있었다. 착하고 똑똑한 동생들이 있었다.

없는 집안에 6남매, 일찍 삶을 터득했다.

양보하고 인내하고 개척하는 것이 생존임을.

자신의 인생 경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그들의 무의식이다.




그들 인생 불평하며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묻지 않는다. 할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는다. 솔선수범한다. 내가 싫으면 다른 사람도 하기 싫은 법이다.

상대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일, 천성이자 훈련이었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집념의 인간들이다. 끊임없이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들에겐 극복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에겐 힘들고 복잡한 일이 그들에겐 간단할 때가 있다. 익숙한 일일 때가 있다.

가난이, 불만족이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불행의 감수성은 적고 행복의 감수성은 높다.

연민과 공감이 가난의 큰 재산이라면 재산이다.

마음잇기는 그들의 큰 에너지다.

혼자인 적이 없다. 언제나 동반이다.

그 동행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다.

논문감이라며 며느리들은 한발 물러난다.

시부모님의 큰 복이다. 형제애와 단합은 동네의 부러움과 시기를 산다.

가난했지만 독성은 없다. 순수하고 착하다. 그것이 에너지의 과소모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얕보면 안 된다. 당수 9단이다.

검약에 대한 고집들이 있다.

얼리어답터들이니 꼭 객관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명석한 머리와 불뚝하는 성격

긍정적이고 유쾌한 에너지가 뚜렷하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성격이기도 하다.

일에선 지나치게 묵묵하다.

그러나 과묵하지 않다.  따분할 새가 없다. 표현이 적극적이다.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기계와 분석에 능하고 일머리들이 타고났다.

수직 구조에서 모두 인정에 목마르다.

거장은 아니지만 전문가 소리는 듣는다.

흔한 말로 '가난과 역경을 딛고' 다.

짜릿한 인생 역전은 아니지만 당당한 삶이다.






환경의 개선은 있어도 습관의 개선은 어렵다.

결혼했을 때 이 남자 맛있는 걸 못 먹는다고 했다. 아내에게 음식을 밀었다. 말장난 같아 나중엔 짜증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가난의 제한이자 본능의 침식일지 모른다.

본능에 충실할 수 없었던 일상다반사의 성장과정이 오죽했으랴

복되게도 없는 살림에 욕구가 많지 않았다.

일에 대한 갈망은 있어도 물욕이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현재를 최대한 소유하고 몰입한다.

남편의 대부분의 말은 일에 대한 사실이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인식하지도 표현하지도 않는다. 아니 못한다. 자신에게만큼은 그렇다.

무엇을 사 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 했다.

남편은 일의 경험, 삶의 경험을 살 뿐이다.

자기 몫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자발적 가난이다.




묻거나 부탁하는 일도 좀처럼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한다. 살아온 대로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결한다.

배우자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부부의 소통을 방해했다.

많은 경험과 박학다식이 무의식적 기준이 될 때 부부 관계에 알맞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의 의식의 차례는 효율을 추구했으나

그의 무의식과 자아를 한결같이 경험해야 하는 단 한 사람, 배우자에겐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남자의 대부분의 인격과

쉼없는 도전과 묵묵한 헌신에는 절로 고개를 숙인다.




아이가 태어났읕 때

남편의 축적된 경험은 빛을 발했다.

확장된 가족이 새로운 의미였다. 태극기를 걸고 싶다고 했다.

쉽게 공감될 수 없지만

동생을 낳았을 때  어머니의 산바라지까지 해 봤으니, 동생을 돌봤으니  한 게 많고 아는 게 많다.

목욕시키고 밥 먹이고 업어 재우고

휴지릍 찾지 않고 윗도리를 들어 코를 닦아주는 남편은 아이들에게 옛날 엄마처럼 굴었다.

노력이라기보다는 모성 같은 양육이었다.

애착의 터전이었고 아이들의 휴양지였다.

아빠의 이름은 언제나 기억되고 언제나 빛났다.

남편이 출장을 가 집을 비우면 어린 아이들은 아빠의 티셔츠를 목에 두르고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티셔츠의 시접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만 엄마 못지 않게 아빠! 아빠! 를 부르며 찾았다.

아빠가 소복했다.

따뜻함의 요람은 아이들에게 되뇌이고 되뇌인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아이들과의 일을 자신에게 다 말할 필요는 없다고. 비밀 한두 가지 정도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냐고 했다.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말이었고 아이들을 존중하라는 말이었다.

사람을 지향하는 남편의 삶의 태도가 설득력이 있었다.






남편은 사람을 존중한다.

상대방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직위상, 나이가 어려도 말을 낮춘 적이 없다.

존중하고 겸손하니 세상에 배울 것이 많다.

관계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누구와도 무리없이 연대할 수 있다.

상생하며 살았다. 관계를 북돋우며 살았다.

자신만을 위해 거머쥔 행복이나 쾌락은 없었다.

그런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살았다.

섣부르지 않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해에 이해를 더한다.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다.

상냥하고 친절하니 세상 사람들에게 득표한다.

삶의 무대가 넓어졌고 단단하다.




굳건한 믿음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


마침 하늘에 헬리콥터가 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걸 당신이 띄운 거냐고.




상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실력을 입증하며

신뢰를 쌓았으니

웃지 못할 과분한 에피소드를 만났던 것이다.

가련할 정도로 자신에게 냉혹하며

인생 효율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에게, 관계된 이들에게

'역시!'라는 소리를 내놓게 한다.

누군가에게 존중과 믿음을 주는 일

어쩌면 자신을 위여하게 만드는 영광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친절함이 노력이 항상 미소와 대가를 되돌려주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도 한 인간은, 한 집안의 가장은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결기가 있다.

긍정의 마인드가 바탕이니, 인내심과 근성이 도전을 돕는다.

도전하고 극복하는 사람은 불행해질 수 없다.

육십 평생 도전하고 극복하는 시간이었으니 어쩌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삶, 재미없을 만큼 단순하고 명료했다.

가족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했다.

회갑이 하나의 인생 매듭으로

지난 날을 되돌아보라는 말일지 모른다.

새로운 인생 마디를 다짐하고

또하나의 출발을 짚어보라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새로운 출발은 없다. 갱신될 무엇은 아직 없다.

매일이 새로운 출발이고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뻔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라는 공명이 이정표가 되는 모양이다.

인생을 마중하며 배웅하며 오늘도 상록수로 서 있다.

때로는 잎 넓은 활엽수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나무 아래서 비바람을 피하기도 하고

두런두런 대화를 하기도 하고

순수한 코드로 나무와 함께 쉬기도 한다.

그리고 지식과 지혜를 얻기도 한다.

아버지의 존재가 자극이고 인생의 소중한 자원이다.

아이들은 나무에게 빚진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아름드리 나무가 담담히 제공하는 그것들이

정말 감사한 것이라고 느낀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결정적인 한 번의 것으로 하는 게 아니다.

축적된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했고, 지금 하고 있고, 앞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인생이다.




남편의 선택이 '-하다'이고

남편의 인생이 '-하다'이다.

한 인간의 삶의 명령이자

한 아버지의 사명이었다.




아이들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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