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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Sep 09. 2023

이 세상이 햄버거 가게라면 나란 메뉴는

가족에 대한 해석



일년에 한 번도 사 먹지 않는 음식이 있을 겁니다

싫어하거나 딱히 내키지 않아서겠죠

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년에 서너 번 먹게 되는 음식이 있습니다

햄버거입니다



남편과 아들이 헌혈 후에 받아오기도 하는 쿠폰을 기한내 사용하는 것입니다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 내게 더 있다고 생각하는지

작은 선물처럼 안깁니다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각종 수제버거..

치킨집 못지 않게 눈에 많이 띄더군요

그러나 헌혈 후 받는 쿠폰이

롯데리아에서 맥도널드로 바뀌어

두 곳의 햄버거맛만 아는 정도입니다

메뉴가 참 다양하더군요

물론 쿠폰으로 사 먹을 수 있는 햄버거는 정해져 있고 그것만 먹지만요

세트 메뉴인데요

햄버거와 감자튀김, 케찹, 콜라입니다

아! 그리고 티슈도요



여러분은 단품 메뉴를 좋아하세요?

세트 메뉴를 좋아하세요?

그 상황의 식욕과 가성비와 경험이 선택의 기준이 될 텐데요

때론 세트 메뉴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제품의 판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세트 메뉴를 구성했을 텐데요

그 구성품은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메뉴들입니다

그러나

콜라만 마시기 위해 햄버거 가게에 가는 경우는 드물겠죠?

감자튀김을 먹기 위해 가는 경우는 더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티슈가 필요해서 햄버거 가게를 간다?

그건 짐작이 안 됩니다

결국 세트 메뉴일 때 그것들의 존재감은 각각인 듯 하나인 듯 더욱 살아납니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처럼요




그런데 팔짱을 끼고 아무리 고민해도

햄버거 가게에서 주인공은 역시 햄버거입니다

햄버거 가게의 권위는 단연 햄버거에 있습니다

감자튀김이 색다르게 맛있다고

그럴 리도 없겠지만 콜라가 별나게 맛있다고 햄버거 가게를 찾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햄버거 가게는 햄버거죠

햄버거 가게를 위한 기여도는 햄버거에게 있습니다. 햄버거 가게의 수익을 책임지는 건 햄버거입니다

조금이라도 특별해지기 위해 머리 터지는 레시피 전쟁과 광고의 각축전이 있습니다

햄버거는 그렇게 소비자의 마음에 군림하게 됩니다



독립적이나 한 묶음으로 묶어버리니

햄버거가 아닌 다른 것들은 들러리가 되고 마네요

그러나 각각의 고유한 맛은 있죠



프렌치 프라이스는 허기만 달래주는 음식은 아닙니다

멍때리고 생각을 둘려보고 곱씹어 보기도 하고 다시 저장해 보는 일상의 조작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여유와 휴식과 아이디어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입이 찢어져라 벌리고 먹어야 하는 햄버거에서 포만감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한가한 생각놓기와 생각 만들기는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열심히 턱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삐져나오고 떨어지는 토마토와 양상추와 소스를 처리하기 바쁘니까 말이죠

시장기와 욕구를 해결하기에는 햄버거가 고맙지만 햄버거를 소비하는 방법엔 나름의 센스를 동원해야 하니 먹기에 올인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부단한 도전과 노력으로 쌓아올린 상업적 결과, 햄버거에 대한 가치있는 소비일지 모릅니다

바쁠 것 없는 소소하고 느긋한 일상의 교감과 자기내면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면 프렌치 프라이스가 제격일 수 있습니다



콜라는 어떤가요?

깨지지 않는 아성으로 입맛을 사로잡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청량음료

세계인이 ‘OK’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디는 말

 ‘코카콜라’

햄버거와는 뗄래야 땔 수 없는 존재죠

찰떡 궁합입니다

목 막힘을 시원하게 뚫어 주고

혀를 즐겁게 합니다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일상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시간을 씻어내 줍니다

정신 차리게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하거나 내던지고 새로운 일을 손에 잡게 하기도 하죠

의욕과 전환을 불러일으키기에 참 좋습니다

더부룩하고 무겁고 답답했던 시간이 순간 증발합니다

콜라의 공세와 쓸모는 어쨌든 대단하죠

온 몸이 기를 폅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순간의 정화를 줍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또 콜라를 찾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티슈는 생활의 필수품입니다

생활 전반에서 대기하고 있죠

생활과 음식과 함께 합니다

입을 닦아주고 손을 닦아줍니다

시간을 아껴주고 그 다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매개체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든 찾게 되고 소비하니

그 역할이 엽렵합니다

서비스의 선두에 있습니다

서비스에 사소함이란 없죠

잘고 시시한 것에서부터 응급 상황까지

사용자가 만족할 때까지 군말 없이 끝까지

서비스에 충실합니다

깨끗하고 천진하고 상냥하게

티슈의 마음은 잘 전달됩니다

티슈가 옆에 없으면 이것만큼 불편한 게 없죠

수건이, 걸레가, 신문지가 티슈를 대신하는 시대는 아니니까요




오랜만에 마주앉은 식탁에서

둘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집이 햄버거 가게라면

아빠는 햄버거, 엄마는 감자튀김, 형은 콜라

그리고 자기는 티슈라고 했습니다

햄버거 세트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죠?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종류가 다른 햄버거가 아니라 감자튀김이라 해서요. 한 번도 감자튀김의 존재가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세트 메뉴에서 감자튀김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 감자튀김이 됐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가족이니까 구색을 그렇게 맞춘 거긴 하겠지만요



그러나 가족의 역할을, 가족의 가치를 그렇게 이해하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낮은 역치로도

튀어나오는 말이 어쩌면 가족에 대한 직관적이고 기초적인 감각일 수 있습니다

인생에 줄기찬 필요와 충족의 경험이 쌓여 나오는 말입니다

똑똑 떨어진 생활의 낙숫물이 아이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 그렇게 새겨진 모양입니다



되고자 하는 부모상이 현실의 부모상과 거리를 좁히기는 참 어려운 거 같습니다

일상이 그걸 뒷받침해 주지 않습니다

부모의 바람은 어떤 속셈도 없이 고스란히 전하건만 아이의 머리는 역동적이어서 고스란히 담기지 않습니다. 다른 경로로 들어가 자리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지금까지의 그릇에서 부모를 담기 때문이겠죠

현실 부모와 자식은 그렇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순리이고 한계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째의 비유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작 자신은 알뜰하고 겸손한 소비를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최선의 경제적 포만감을 주기 위해 세상을 향한 레시피 개발을 멈추지 않는 사람,

면면히 가장의 책임이라 여기며 묵묵히

그러나 신나게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고단백 고탄수화물의 풍부한 맛은 남편이 확보했습니다. 햄버거가요

둘째의 우리 가족 햄버거세트 비유는

지금 얻고 있고 앞으로도 얻어야 할 것에 대한 감사의 칭송과 접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자유를 얻기 위한 언변일지도 모릅니다



편안하고도 만만한 소통과 교감은 엄마 몫입니다

감자튀김이요

엄마와의 시간은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됩니다

부엌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면

코로 깊은 호흡을 하며 엄마 곁으로 오게 돼 있습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맛있는 냄새가 나네!" 하면서 말이죠

그럼 저는 이러면 됩니다

"수고했어! 오늘은 어땠어?"

솔직하고도 시시콜콜한 대화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일시정지, 비울 감정, 키울 감정이

중간중간 지나가기도 하지만 눈앞의 따뜻한 음식 앞에선 생각과 말이 다시 편안해집니다

행복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는 완료될 수도, 완료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 먹지 못한 감자튀김을 집으로 싸 가지고 와 먹고 싶을 때 다시 펴서 먹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일상이 있는 한 언제든지 얼마든지 새 것처럼 보따리를 폅니다

식어도 원래의 맛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감자튀김에겐 있습니다

감자튀김의 큰 장점이죠

그러나 소금을 덮어 쓰고 있어서 가끔은

입가를 가렵게 하거나 따갑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에 대한 공감과 살가운 사랑 표현의 빈도가 이어진다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요

감자튀김은, 엄마는

편리한 존재가 아니라 편안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이 시대의 생존 전략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남과 같아지려고도

융합적 혁신을 위해 자신의 레이스를 멈추려고도

공존의 걸림돌을 함부로 허락하려고도 하지 않는

독립적이고도 독창적인

고유의

큰아들, 콜라입니다

시원하게 일상의 녹을 벗겨내며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줍니다

세계에 대한 초월적 인간애로

호기심과 흥미를 유지하며 미래로 전진합니다



먹고 마셨다고 다 끝난 건가요?

마지막 정리를 해야죠

티슈입니다

립서비스에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소녀 같은 미소와 감당할 수 없는 재치로

일소합니다

우리 가족의 매개체입니다

곤충이 되고  새가 되고  바람이 되어

진지한 우리집에 꽃을 피웁니다

웃음꽃을 피웁니다

둘째는 일상의 흐름을 향상시키는 촉매제입니다




햄버거여도 좋고 감자튀김이어도 좋습니다

콜라여도 티슈여도 상관없습니다

네 꼭지짓점의 사각형처럼 직선으로 만나도

각각을 받쳐주는 존재에 대한

자발적 각성과 감사함이 뒤따르면 됩니다

그러나 때론 가족이라는 원을 이루기 위해

역할과 개성과 조화를 고민합니다

맛과 품질을 올리며 건강한 햄버거 세트가 되기 위해서요

사회적 에너지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면서요



내일의 햄버거 세트에

누가 햄버거가 되고

누가 감자튀김이 되고

누가 콜라가 되고

누가 티슈가 될지 살아볼 일입니다

어떤 전환이 있을까요?

시간은 준엄하고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찾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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