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emyungdan Jul 08. 2023

아름다운 오해는 하지 마세요

국가 공식 용어는 아닙니다만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영화의 덕후입니다

섭렵한 양이 상당합니다

밥 먹듯이 했습니다

꽂혔으니까요

실력이 수준급입니다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그러나 누군가 질문을 하면

건드려 주기를 바랐다는 듯이 술술 나옵니다

전문가급 평가까지도요

걸렸던 부분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주니

믿음이 갑니다

촉은 어떤가요?

소름~소름이 돋습니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든 다음 장면이 그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주관이다 싶으면 번번이 객관적으로 입증이 됩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가견이 있음을요



그 떡잎은 9살 때부터 있었습니다

일본 여행에서 유명 고깃집을 겨우 찾은 것 같았는데 이번엔 몇 층인지를 몰라

눈뜬 장님처럼 건물의 빼곡한 간판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망설임없이 한 간판을 가리켰습니다

간판 색깔이 고기 색깔과 같으니

그 집이라고 했습니다

촉은 정확했습니다

그 센스는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죠

뭐가 돼도 될

될성부른 나무였습니다





게다가 일본어는 덤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기쁩니다

내일은 뒷전이지만

될성부른 나무이니

뭐 하나 건지나 해서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외국어는 이점이 있으니까요

천만다행입니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에

현실감 없던 사람의 값진 발걸음은

울림이 큽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이 찰진 걸 보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들리냐 물으면

들린다고 했습니다

물어볼 걸 물어보라는 듯이요

자막이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도

자막과 일치하는 번역인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뜻밖의 능력을 발견한 가족들의 감탄이

그의 자존감을 고공비행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거드름을 피우지는 않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영화, 거기에

일본어까지

더할 나위 없는 소통의 밑거름이죠

네트워크의 발판은 역시 게임입니다

게임으로 정을 다져온

일본 친구들과의 교유가 시작됐습니다

작년 12월, 일본 친구가 먼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음식을 만들어 먹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즐겁게 어울리는 사진을 친절하게 톡에 올려 주었습니다

일본어를 통한 원활한 의사소통이

관계의 도약대가 되는 듯했습니다



이번엔 그가 일주일 일정으로 일본 답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5일은 개인 일정으로, 2일은 모임 일정으로

설렘을 안고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첫날, 안부를 물었습니다

고양이 료칸이 무지하게 재밌다고 했습니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망중한을 즐기는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온천에 들어가기 전 유카타를 입고 목욕바구니를 든 사진도 한컷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수십 장의 풍경 사진과

먹음직스런 음식 사진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그간 일본 문화의 지식과 일본어를

생생하게 꽃피우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여행에선 가지고 있는 능력을 탈탈 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촉까지도요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는 스타일은 더욱 그렇죠

후쿠오카, 유후인, 푸, 기타큐,

시모노세키..

로컬스토리, 로컬푸드를 찾아 이동량이

엄청납니다

개인 일정이 너무 길었던 걸까요?

잘 다니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정표에 적힌 글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 . . . ."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메뉴판이 흰 건 종이, 까만 건 글자네요.

하하하하!"



". . . . .!!"



순간 멍했습니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하늘 높이 떠 있던 노란 풍선이

푸르르르 바람이 빠지며 회오리를 치더니

바닥에 철썩 떨어졌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에 있는

'어린(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아뿔싸!!



우리 둘째였습니다

말은 하지만

일본어를 읽지 못합니다

쓰지도 못합니다

어린 백성이었습니다

기대와 사랑으로 들떠서

보고 싶은 대로 봤습니다

아름다운 오해였습니다

아들이 제대로 겸손해야 할 이유였습니다



남편이 웃픈 표정으로 한 마디 습니다

"문맹이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기어코 노래와 만나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