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emyungdan May 07. 2023

도둑청소

베타맘은 어려워



보라고 봄이 있지 않은가

빛나는 햇살의 행진을 봐야 하고

하루가 다르게 경쟁하는 신록을 봐야 하고

팡파르 울리는 꽃을 봐야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 달콤한 봄의 의식을 제쳐두고

아들의 방을 봐야 한다.



밝고 맑은 일요일 오전

물뿌리개 기울이며 예쁜 꽃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는 여유로움과 한가한 외출이 제격일진데

오늘은 느긋함과 편안함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남아 있다.

백주대낮에 도둑이 돼야 하다니...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작업하러 들어가는 것이니

도둑의 처지가 맞다.



"엄마, 오늘 제 방에 또 내려오셨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연습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일거수 일투족을 참견하며 관리에 나서는 헬리콥터맘도

자식을 품에 안고 무슨 일이든 다 해 주려는 캥거루맘도 못 된다.

호랑이처럼 엄격히 관리하는 타이거맘은 애들이 예뻐서 줏대가 없을 때가 많았고, 서른이 됐으니  이제 더 이상 먹히지도 않는 나이다.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많이 한 잔소리가

'정리 좀 하는 게 어때?' '청소 좀 하는 게 어때?'

'정리 좀 해!' '청소 좀 해라!'였다.

처음엔 조언을 했고 그 다음은 권유를 했고 끝내는 잔소리로 넘어갔다.



평일엔 회사 다니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지만

주말이라도 다른 스케줄이 없을 때는 짬을 내

청소를 하면 좋으련만

생각대로 몸과 마음이 움직여 주지 않는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고 건너뛸 때가 있다.

청소가 일주일 단위로 이루어지다 보니

다음주 다음주로 미루다 보면 2주 3주만에 집을 치우는 형국이 된다.

결국 내가 목도하는 것은 입을 벌리게 되고 한숨을 짓게 되는 장면이다.

당장이라도 치우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 곳이 자신의 공간이 맞냐는 아들의 예각적인 반응에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공간이 다.

배타적인 공간이다.



아들이 유럽 출장을 갔다

자신의 거처 출입에 정색하고 질색하고 때론 날카롭게 반응하는 아들방에 오늘은 눈치 볼 일 없이 청소의 흔적을 마음껏 남길 참이다



철의 장막 현관문부터 열어젖혔다.

그리죽의 장막 중문을 열고 들어섰다.

익숙한 광경이다.  똑똑히 보았다.

폭탄이다!

사용하지 않는 씽크대와 TV는 아들에겐 옷걸이다.

옷이란 옷은 다 나와 있다.

실내복도 외출복도 출근복도 주짓수복도

빨래한 옷도, 빨래하지 않은 옷도

한데 어우러져 중고품 옷가게 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번갈아 쓰라고 준 규조토 발매트는  

하나는 욕실 앞에 하나는 서랍장 아래 세탁을 기다리며 널브러져 있다.



먼지는 봄바람처럼 은밀하다.

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아들의 방과 거실이 먼지의 집결지가 된 듯하다.

먼지는 비축해서 뭐하려나

6개월 만에 하는 대청소다.

엄선한 청소도구의 활약을 지휘한다.



긴 자를 이용해 붙박이장 위를 닦아냈다.

헐~ 대박!

극세사 앞뒤쪽이 순식간에 먼지를 뒤집어 썼다.

먼지에 무게가 있다면 살인적인 낙하물이다.

부직포로 블라인드를 헷갈리지 않게 하나씩 잡으며 닦았다. 맑은 정신과 인내가 필요하다.

흰눈에 발자국만 있는 게 아니다. 회색 눈의 손자국도 있다.

바깥 창틀의 먼지 더께는 시간의 더께다.

6개월의 시간을 물티슈로 닦아내기엔

손가락 저리는 노동이 겹겹이 필요하다.

쩐다!

시간이 가징 많이 걸리는 바닥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4시간 반이 지나갔다.

이제 성인이니 알아서 하게 두라던 남편도

물호스를 끌어다 베란다를 씻어내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우리 아이는 폭탄이 아니다.

일년 남짓 독일에 다녀온 후로 많이 달라졌다.

일년이라는 고강도의 시간이 아들의 강산을 바꿔 놓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 밑거름 더 탄탄하게 다져온 것이 우리는 자랑스럽지만

독립심과 자율성 그리고 자기결정을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더 강화된 것 같아 난처하거나 서운해질 때가 있다.

그 시간이 전쟁 같은 생존의 시간이어서 더 깊이 내면화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 온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으니 서서히 회복될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 아침 식사 후면

'내려가서 청소해야지요'가 입버릇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엄마의 기분을 맞춰 주는 처세가 반이었던 거 같다.

고양이 세수였으니 말이다.



아들 방에 들어서면 깊은(?) 인상을 받는다.

나무 책상 위에는 조도 낮은 조명과 노트북

필기도구가 질서정연하다.

책과 잡지가 두어 권 벽에 기대 세워져 있다.

거실의 아들과 방의 아들은 영 딴판이다.

아들의 두 얼굴이다.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이다.




아들은 자기 계발엔 득달같고 철저하다.

그 녀석의 시계는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돌아간다.

자신의 에너지와 재능을 최대한 발전시키며 살아간다.



다양한 목적의 한국어학습 수요자들을 위해 온라인 수업을 꾸린 지 여러 해다.

도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들과의 교유를 굉장히 즐거워한다.

독일 고등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하며 그 과정의 어려움과 성취감을 들려주고

동생 친구의 졸업작품을 함께 기획하고 출연하며 신나게 도와주고 있다.

주한 아일랜드 모임에 나가 언어를 나누고 함께 축구를 하는 등.. 일상을 북돋우고 성장해 나가려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아들의 큰 장점이다.

가끔 사람들이 아들의 이런 저런 활동에 호기심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아들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MZ세대 꼰대라 불릴 만큼 아들의 신념은 꿋꿋하고 어쩌면 특이하다.

평균치에서 벗어나 또래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무엇이 있다.

아들을 행동하게 하는 자극은 곳곳에 있지만

생각이 많은 아이여서 그런지 관심 밖의 일은

그저 단순해진다. 가볍게 가려 한다.

정리 안 된 공간이 아들을 자극하지는 못 하는 거 같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아들도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기준과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정돈된 공간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심리적 인프라가 되고

누군가는 미래를 향한 세상과의 소통이 행복을 주도한다.



행복은 삶의 질과 관련이 깊다.

그리 삶의 질은 결국 삶의 균형을 기반으로 할 때 향상된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누군가와의 합에서 삶의 질을 방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타인을 헤아리는 현명함을 균형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결혼할 아들을 생각하니 노파심은 자꾸 줄기를 다.



선택하고 선택 받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자신만의 보폭으로

성실하고 섬세하게 삶을 구축해 나가는 아들이

나와 누군가에겐 천연각성제가

때론 천연위로제가 되곤 한다.

용기 있게 의지의 한 수를 보여줄 때가 있으니 그렇고

스스로 순수하게 우러나 '함께'에 스미니 그렇다.

뒷담화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지만

나는 이런 아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공공연한 주거침입을

돌아온 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도둑청소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본다.

심은 통하게 마련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오해는 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