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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myungdan Apr 15. 2024

나도 그런데 너도 그렇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직 부르지 않았지



봄은 때늦은 눈을 안겨주고 변덕스런 바람을 안겨주고 일찍 눈뜬 꽃잎에 벼락같은 놀람을 주고 감기와 재채기를 안겨주고 조바심을 준다.

그러는 사이 숲과 나무와 풀은 더욱 강인하게 생명의 눈을 틔우고 순결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직 부르지 않은 것처럼  

아름다움의 절정에 박차를 가한다.

이 봄,  봄의 생명력에 이끌려 사람도 새롭게 영혼의 눈을 뜬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 부를 것처럼.

봄이 오는 길 비장하고 눈부시다.

샛길로 들어선 봄이 모든 길을 봄으로 만들었다.





봄은 남자 여자 그리고 꽃이다

봄은 아이 어른 그리고 꽃이다

봄은 너와 나 그리고 꽃이다

봄은 사람 그리고 꽃이다

봄은  그리고 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럴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만 빼고





스스로 패러디를 읊는 시인은 알고 있었다

풀꽃이 어떤 메아리로 울리고 있는지

우리 곁에서 어떤 숨을 쉬고 있는지

시인은 즐겁고 기쁜 일로 여기고 있었다

초소형 초경량 초강력 국민시라는 것

대표시는 독자가 만들어 준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아닌 너를 지향하며

독자가 목표가 돼야 한다는 걸





나태주 시인의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80을 바라보는 시인은 객석 뒷좌석에 앉아 계시다 사회자의 소개에 단상으로 올라갔다.

다부진 모습에 우리 주위의 흔한 풀처럼 작고 친근했다.

무대 뒤에서의 등장이 보통이지만 자신의 성이 '나'가이기 때문에 자신이 알아서 나간다고 했다며 재치있는 웃음을 주셨다.

등장만큼이나, 50년이라는 시인의 연륜만큼이나 시와 말씀은 자유롭고 편했다.





꽃은 햇빛의 웃음 조각 같다

앞맵시에 현기증이 인다

그러나 모든 꽃은 결실을 향한 것이지

승리를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꽃은 나무를, 풀을 노래하지만

꽃은 사람들에게 속삭인다

더 섬세하게 다가오라고

더 느린 발걸음과 응시를 달라고

그래야 진짜 의 모습 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비교할 수 없는, 경쟁할 수도 없는.

풀꽃은 시에서 또 다른 결실을 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너도 그렇다!

풀꽃에서 사람으로 바뀌며 주는 울림

이 문장이 없다면 시는 존재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시인은 신의 문장이라 했다

신이 나는 문장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만 그렇다

너는 그렇다


아니다. 너'도' 그렇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그렇다니 얼마나 큰 공감이며 위안이며 안도인가

생명을 아우르고 관계의 품격으로

인간의 존귀함에 정성껏 닿게 하니 신의 문장에 걸맞다

모두가 신의 손길이 닿은 예쁜 꽃이며

너도 나도 사랑받아야 할 존재가 되는 우러름의 시선이다





시는 나를 닮았다

시인은 자신을 작은 사람, 구석진 사람, 낙후된 사람, 시골 사람이라 했다

어느 것이 극복할 콤플렉스였다면

어쩌면 시는 열등감의 투사일지 모른다

버림 당한 첫사랑의 절망에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청년

실패와 좌절이 없었다면 시를 쓰지도 시인이 되지도 않았을 시와의 적응, 시로의 극복

시는 삶을 견디기 위한 승화된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시는 인간감정의 절실한 심부름꾼인지도 모르겠다





나태주,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유령 같고 안개 같은 시가 아니다

퍼즐 같고 추론 같은 시가 아니다

짧은 시다. 쉬운 시다

단순한 시다. 임팩트 있는 시다

울컥을 아름답게 다스리는 시다

시인이 지향하는 시다

시는 시 자체를 써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  

참된 그것을 쓰면 된다고 했다

시를 써야지 시에 대해서 쓰지 말라고 시인은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시인의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깝고 평범한 말이었지만

삶의 순간 순간 포기하지 말고 곱씹어야 할 진실과 참됨의 언어였다

자세히 생각하고 오래 생각하니 그랬다.





말의 운명은 우리 삶을 이끌 수 있다

운명 지을 수도 있다

최고가 아니어도 최대가 아니어도

탄식을 물리칠 힘이 시에는 있다

시인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란





나도 풀꽃이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제 삶의 노래, 사람의 노래 시작하자

아이 같은 눈으로 풀꽃의 시선으로

새날 첫날 새사람 첫사람을 찾자

시 한톨이 너를 나를 구원할 수 있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피워

참 좋아





하늘하늘 햇빛과 봄을 부채질하다 자신마저 가벼워져 날아가는

그러나 그 찬란한 나무 아래 아직 피워야 할 꽃이 많다

풀꽃이 많다

풀꽃을 보고 알고 살아보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직 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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