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지나며

by 꿈부기

광야의 또다른 말은 '훈련장', '학교'이다. 광야의 어원인 밋드바르의 뜻이 '훈련장', '학교'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을 광야에서 보낸것으로 유명하다. 다윗이 왕되기 전에도 광야에서 10년을 보냈고 예수 또한 공생애 시절을 시작하기전 40일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처럼 광야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훈련을 하는 곳이다. 이스라엘민족은 홍해를 뚫고 나온 광야를 보고도 기뻐하지 않고 이제 뭐먹고 사냐고 걱정만 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때가 2년되는 해였는데 "젖과 꿀이 흐르지만 키가 크고 무서워서 우리가 당해내지 못할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그 불신이 더 컸던 10명과 그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은 상반되었다. 그러나 10명이 더 많았으므로 38년을 더 돌게 된다.


광야는 하나님의 시야로 세상을 볼줄 알게 될 때 끝이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때 광야는 끝이난다. 그러나 우리는 떡으로만 살려고 할 때가 많다. 예수가 눈을 뜨게 하는 사람, 일어나 걷게한 사람 귀신들린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이다. 못 고칠거라 생각했던 것을 고치는 것은 그 믿음하나라는 것, 그것을 예수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과 선악에 사회적 편견은 작용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광야를 지나고 있다. 살만하면 광야가 아닐 것이다. 나는 항상 내일을 생각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를 말이다. 이번 글은 예수라는 아주 종교색이 짙은 인물이지만 그 속에서 배울 점도 충만한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 4복음서를 중심으로 승천 이전까지 살펴봤다. 깊이있는 통찰을 많이 담아내진 못 한거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는 좀 더 잘 쓴 글로 더 철학을 담아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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