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공간, 우리를 만드는 순간

공간과 사람 사이의 끝나지 않은 대화

by 혜온

처음으로 '공간'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정의는 명확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질과 물체 사이에,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 사이에, 우리가 설계하는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 그것은 정의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 연재를 쓰는 동안, 저는 계속 그 '사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로컬 브랜드의 마케팅을 맡을 때마다 듣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가게는 작지만,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그들은 대개 그 '특별함'을 말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좋은 재료, 정성스러운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 그런 것들은 다 맞는 말이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제가 그 공간에 직접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 특별함은 사실 공간 그 자체였다는 것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의 공기, 카운터 너머로 들리는 소리, 의자에 앉았을 때 몸이 느끼는 안정감. 사람들은 그 브랜드의 제품만 사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경험을 삽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답합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공간입니다."


로고가 브랜드가 아닙니다. 슬로건이 브랜드가 아닙니다. 인스타그램 피드가 브랜드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실제로 당신의 브랜드를 경험하는 것은, 그들이 발을 디디고 서는 그 공간에서입니다. 공간이 너무 어둡거나, 너무 춥거나, 동선이 불편하거나, 앉을 곳이 애매하면, 아무리 좋은 마케팅 메시지도 무력해집니다. 반대로, 공간이 말을 걸어오면, 그 어떤 마케팅보다 굳은 힘을 갖습니다. 공간 자체가 메시지가 되니까요.


브랜드 전략을 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브랜드입니다"라고 외치는 것보다, "당신은 여기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것이 더 강력합니다. 공간은 그 속삭임이 물리적 형태로 구현된 것입니다. 벽의 질감, 천장의 높이, 바닥의 재질, 공기의 흐름. 모든 것이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안전합니다" 혹은 "이곳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제 책상 위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왜, 라고 묻자. 세 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기획을 할 때마다 보는 메모입니다. 클라이언트가 "밝은 공간을 원합니다"라고 하면, 저는 묻습니다. 왜 밝아야 하나요? "활기찬 느낌을 주고 싶어서요." 왜 활기차야 하나요? "고객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으면 해서요." 왜 그 에너지가 필요할까요? 그렇게 해야 그냥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닌, 진짜 답이 나옵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택할 여유를 느꼈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밝기가 아니라 여유를. 조명이 아니라 허락을.


지하철역에서 본 장면이 있습니다. 한 남성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출근 시간의 혼잡한 역사에서, 그는 정확히 기둥과 벽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 자세가 묘하게 안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지점, 단단함과 지지가 교차하는 그 작은 틈. 그는 아마 의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왜 그 자리를 선택했는지. 하지만 그의 몸은 알고 있었습니다.


브랜드의 공간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선택하는 자리, 무심코 손을 얹는 표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는 높이. 우리는 그것을 데이터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몸의 기억이고, 본능의 지혜입니다. 좋은 브랜드 공간은 그 본능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발견하고, 존중하고, 더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요즘 로컬 브랜드들이 SNS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예쁜 사진, 감각적인 카피, 트렌디한 소재의 활용.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온라인에서 본 이미지와 실제 공간의 경험이 다르면,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그리고 실망은 배신감이 됩니다. "사진발만 좋네." 그 한마디가 브랜드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반대로, 사진으로는 잘 담기지 않지만 실제로 가면 좋은 공간이 있습니다. 빛의 각도, 공기의 온도, 의자의 단단함, 바닥을 걸을 때의 소리. 이런 것들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브랜드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에서의 정보를 보고 오지만, 직접 오감으로 느낀 현장의 경험 때문에 '다시' 옵니다. 작은 동네 카페에서도,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동네 병원에서도. 오프라인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최적화된 공간은 때로 답답합니다.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고, 모든 동선이 효율적이고, 모든 순간이 설계되어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숨이 막힙니다. 사람에게는 길을 잃을 권리가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모퉁이를 만날 권리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발걸음을 멈출 권리가. 좋은 공간은 그 우연을 남겨둡니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을 때, 많은 로컬 카페와 식당이 텅 비었습니다. 아름다웠지만, 차갑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맥시멀리즘이 왔고, 공간은 다시 채워졌습니다. 화려했지만, 정신은 없었죠. 저는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다고 믿습니다. 비우되 텅 비지 않게. 채우되 과하지 않게. 그 균형점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감각으로 찾아야 합니다.


브랜드 기획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번역가라는 것을 항상 되뇌입니다. 브랜드의 언어를 공간의 언어로, 공간의 언어를 감정의 언어로 옮깁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본에 충실하되 직역하지 않는 것입니다. 브랜드가 "우리는 프리미엄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금박과 대리석으로 직역하면 실패합니다. 진짜 프리미엄은 태도입니다. 고객을 대하는 방식, 공간 속에 발을 들인 한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 디테일에 깃든 배려. 그것이 공간의 문법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가끔 프로젝트가 끝나고 시간이 흐른 뒤, 제가 마케팅했던 브랜드 공간을 다시 방문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 공간을 사용하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공간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혼자 오기 좋다고 생각했던 곳에 친구들이 모이고, 대화하기 좋다고 만든 곳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습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제 전략이 잘못된 건가?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공간은 완성되는 순간 브랜드의 손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습니다.


공간은 악보와 같습니다. 작곡가가 음표를 배치하지만, 진짜 음악은 연주자가 만듭니다. 같은 악보도 연주자에 따라 다르게 들립니다. 브랜드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메시지를 만들지만, 진짜 경험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완성합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숨소리가, 웃음소리가 공간에 쌓이면서, 비로소 그곳은 살아 숨 쉬는 브랜드가 됩니다.


이 연재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완벽한 브랜드 공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매번 새롭게 배웁니다. 어떤 전략은 성공했고, 어떤 접근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브랜드의 공간 기획을하는 궁극적인 이유. 그것은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하루를 살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하루의 대부분은 공간 안에서 일어납니다. 출근길 지하철, 사무실 책상, 점심을 먹는 식당, 저녁을 보내는 집. 각각의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이 쌓여서, 우리의 하루가 되고, 삶이 됩니다. 그렇다면 로컬 브랜드의 공간이 누군가에게 주는 한 시간, 그 짧은 순간의 책임은 명확합니다. 그 공간이 오늘 하루에 긍정적인 한 줄을 더하는 것.


예전에 일부러 지도에서 처음 보는 골목을 걷다가, 오래된 동네 슈퍼마켓에 들어갔었습니다. 형광등 불빛은 너무 밝았고, 통로는 좁았고, 냉장고는 낡았습니다. 공간 브랜딩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완벽했습니다.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던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일관성이, 그 변하지 않음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안정이지 않았을까요?


깨달았습니다. 브랜드를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쌓이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들고, 기억이 축적되면서, 공간은 장소가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씨앗을 잘 심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자랄지는, 시간과 사람들이 결정하겠지요.


그러니 이제, 브랜드 공간을 대하는 마음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요. 공간을 영혼 없는 마케팅의 도구로만 보지 말고,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보면 어떨까요. "이곳에 오면,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할 것입니다"라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결국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라고 믿습니다.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바람이 어떻게 흐르는지, 소리가 어떻게 울리는지. 그것을 먼저 듣고, 그 다음에 전략을 짜면 어떨까요. 공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성격을 무시하고 트렌드를 억지로 입히는 대신, 그 공간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아주면 어떨까요.


이 연재는 여기서 끝나지만, 브랜드 공간에 대한 탐구는 무한한 영역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들른 로컬 카페, 자주 가는 동네 식당, 퇴근길에 들르는 작은 가게들. 그곳들은 사실, 누군가의 깊은 고민으로 만들어진 공간일 수 있습니다. 혹은, 특별한 전략 없이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그곳을 빚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어느 쪽이든, 그 공간은 여러분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그 대화를 듣는 것. 공간이 속삭이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마지막 몇 자를 적어봅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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